2011년 8월 22일 월요일

OISTAT 극장 건축 공모전 그리고 THE HOUSE IS NOT A HOME!

2011년 4월, OISTAT이란 단체에서 4년에 한번씩 주최하는 극장건축 공모전이 열렸다.

올해는 실제 프라하에 위치한 작은 교회를 '어떤 특정한 공연'을 진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재건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상 공연장 건축 아이디어 공모전이었고, 세계 44개국의 많은 건축가, 디자이너, 공연기획자들이 참가하였다.










IN THE B 도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2명의 건축가- Kyung jae Kim, Hoang Nguyen 님들과 함께 콜라보하여 이 공모전에 참가했다. 결론적으로 입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특정한 공연을 위한 (무용,연극,발레,미디어아트 등) 공연장' 에 대한 건축적, 미술적인 관점의 디자인들이 대부분 이었던 입상작들과는 달리 개념적인 관점에서의 공연 그리고 공연장 디자인을 하고자했던 우리의 상상해봄직한 시도가 가여워서(?) 이렇게나마 포스트를 올린다ㅠ








위와 같은 작품들이 올해의 수상작들이다. 최근의 화두인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연장부터 무용, 연극, 음악공연, 파티를 할 수 있는 공연장까지- 다양한 미학적 아이디어들이 본 공모전에 선보여졌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들도 다음과 같았다.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관객과 무대사이의 물리적인 새로운 접근, 관객에 의해 생성되는 공간들.





그러나 생각의 머리를 틀게된 건, 위와 같은 아이디어들은 꼭 '프라하의 작은 마을의 그 교회'가 아니더라도 실행될 수 있는, 혹은 상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란 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그 교회만 가질 수 있는 극장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 에 들어섰을 때 그 곳이 밖과 다른 차원의 무대가 되는 공간(공연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 아닌 교회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극장!
바로 이것을 실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연극의 시대를 거쳐온 현재의 일반적인 공연무대 즉, 무대 안이 특정한 공간으로 '잘' 꾸며지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 실감나는 원근법, 조명 등을 사용하는 것(예를 들면 드라마세트장 처럼) 보다 실제로 그 무대가 되려고 하는 특정한 공간에서 직접 공연을 하는 것(수원성 성벽에 기대서 '변방의 북소리(by 유머일번지)'를 하는 것 혹은 경희궁 마루에서 명성왕후를 공연하는 것 같은)이 더 현실감 있는 공연인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스트리아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의 < everyman >(1920) 이었다.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이 공연은 세트로 구성되었을 성당을 대신하여, 실제의 성당 앞에서 공연을 하게된다. 그것으로 인해 < everyman > 은 더욱 '있을 법' 해졌으며,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번 인용했던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을 다시한번 소개하겠다. 그의 저서 <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른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 만의 어떤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마치 배우라는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것 처럼 연극적이라고 했으며,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공간을 마치 커다란 공연무대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공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결국 공연이라는 것은 <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수한 사건'의 관찰 > 이 결코 아니며 우리생활과 아주 밀접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커피숍에 앉아서 어떠한 무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잠깐 씩 들려오는 이야기 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그럴 때 나는 나름대로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의 공간을 가상의 프레임으로 가두고, 어디선가 지켜보는 하나의 관객이 되어본다- 이것이 아주 재밌는 연극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어지는 하나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연무대에 존재하는 배우임과 동시에 관객인 것이다.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주방이 보이는 중국집이 있다고 가정하자(주방장의 요리모습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갑자기 그 주방장이 면을 때리기 시작한다.(그 곳은 수타짜장면이 유명하다.) 절묘하고 예술적인 움직임, 칠 때 마다 심금을 울리는 공명- 우리는 이것을 공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식적으로의 공연이 아니었던 순간에도 나는 저 위에 보이는 성당을 지나고 있을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있을 수도 있었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멀리 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을 수 있었다.
자, 지금의 나와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 저 위의 그림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을 응시하는 저 누군가 : 배우1과 배우2가 대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 결론적으로 이 두개의 상황은 똑같다 왜냐하면 단순하게도 연극은 현실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공연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현실은 재현되어질 만큼 아주 연극적이다.
그래서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질 법한 어떤 행위들을 모방한 재현들은 매우 '있을 법'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재미있는 공연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떤 공간에서 벌어질 만한 특수한 상황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인지 공연인지 햇갈리는 경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리처드 쉐크너(뉴욕대 공연학 교수)는 그의 퍼포먼스 이론에서 공연이 사람들의 상상을 가로막는 공연장이 아닌 극장 밖, 즉 병원, 공원, 놀이터 등 에서 재현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연극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형식 속에 고프만의 연극적 사회학이 결합되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준비된 관객이 아닌 일반사람들이 현실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현의 공간(공연의 공간)의 관객이 되버리는 것 - 분명 재미있는 상황이다.




THE HOUSE IS NOT A HOME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THE HOUSE IS NOT A HOME (가제) 이라고 하기로 했다. 다시말해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집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재현들 - 현실과 공연 사이에 존재하는 - 을 통해서 결국 집에 있는 것이 아닌(집에서 벌어질 법한 공연의 공간에 있었던 것 이었음)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S사의 아파트를 판매/홍보하는 모델하우스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집을 구경하고 살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렇게 모델하우스에 들어선 사람들은 실제로 집처럼 되어있는 한 공간의 쇼파에 앉아 태연하게 신문을 보는 어떤 중년 남자를 발견한다.....미친사람일까?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갑자기 "여보 밥아직 멀었어?" 라고 말한다. 이 때 주방에서 부터 따뜻한 음식을 들고 등장하는 아줌마.. 그 옆으로 또 다른 집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한남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 거린다. 처음에 콧노래로 시작된 음악은 아까 다른 공간의 식사를 막 하려는 부부의 딸이 리코더 연습을 하기위해 마루로 등장하면서 흥미로워진다. 현실공간에서는 옆집의 콧노래와 앞집의 리코더 소리가 하모니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비현실적 재현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미 모델하우스가 아닌 모델하우스에서 재현될 수 있는 공연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아파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공연적 재현을 위해 몇가지 주의해야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는 공연은 시작과 끝이 없는 즉, 언제 어디서부터 보기를 시작하더라도 이해되어야한다. 왜냐하면 관객은 처음부터 관객이 아니어야 하고, 관객은 언제든지 공연으로 부터 분리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재현을 위해 소리와 시각, 이미지를 완벽하게 통제해야한다. 재현의 공간이 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비현실적 현실감이 우리를 장악해야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연은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운 재현이어야 한다. 관객을 관객으로 끊임없이 유지시키는 것은 공연이 가진 이야기구조 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탈텍스트적인 다양한 시도가 요구 되어진다.

위의 세가지 점을 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된다면, 어떠한 공간에서라도 - 영화관, 커피숍, 횡단보도, 병원, 은행 , 기차역 - THE HOUSE IS NOT A HOME 은 가능하다.

실제로 INTHEB는 얼마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 음악, 춤, 그리고 비디오아트가 연결된 어떤 하나의 재현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THE HOUSE IS NOT A HOME 의 추후 블로깅을 통해서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고있는지, 이것과 플래쉬몹 또는 해프닝과의 차이점, 수익을 내는 방식 등에 대해서 정리할 생각이다.





자 이제 다시 건축공모전으로 돌아가보겠다. 위에서 언급된 연극적 사회학에 바탕을 두고 또 하나의 재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이 보이지 않는 벽은 8층 건물의 모텔을 무심코 보다가 떠올리게 되었는데, 단순히 저기 있는 모텔 안 을 훔쳐보고 싶어서 한쪽 벽이 보이지않는 투명벽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투명벽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마치 각각의 우리 안에 갇힌 짐승들이 짝짓기를 하는모습처럼 보이거나 혹은 닭들이 빼곡히 앉아 알을 낳는 양계장처럼 보일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않는 벽'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한번 살펴보자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그곳에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있다. 티비를 보는 가족, 싸우는 커플, 사랑하는 연인, 눈물을 흘리는 형제들, 불이 켜진 집, 불이 꺼진 집, 붉은 벽지를 바른 집,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

단지 하나의 공간(한 집)만으로도 매우 드라마적인 한편의 공연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수백개가 한 군데 모여 있는 공간(아파트)이라니!



마치 한쪽 벽을 잘라내서 우리가 그것을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다면 "이건 공연으로써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재밌는 것은 '보이지않는 벽'의 가정에 의해서 우리(관객)는 아파트 전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지만 정작 각 각의 공간들 서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각각의 방 안에 존재하는 드라마들이 재밌는 연극적 아이디어를 통해 연결되고 해체될 때 그 벽을 통해 보이는 100개의 방은 우리에게 하나의 큰 방,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공연으로 보여질 수 있게 된다.







위에서 회색지붕의 건물이 바로 그 교회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그 안에 각 공간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응집된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도록) 연결되어있는 다른 건물들과 한꺼번에 잘라내고 그곳에 객석을 넣어보았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보이지않는 벽' 이 있는 그대로의 교회가 되며, 교회 안 에서는 일상과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하고 밥을 먹고 계단을 오르내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행해지고, 보여지는' 하나의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간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가운데, 위에서 언급했던 비현실적, 다시말해 연극적 장치들을 계속 해서 그 속에 심어놓는 것이다. 우연처럼 가장된 비현실적 장치들. 바로 상황에 따른 연결과 분리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으나 그들은 그럴 수 없다는 설정이기에 더욱 비현실적인 소리의 하모니들,



이 외에도 색깔, 움직임 등 다양한 분리와 연결을 통해 전체 공간을 연극적인 공간으로 전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십개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 그것들이 때로는 연결되고
때로는 분리되며 통합되었다가 해체되는 하나의 이미지-
이곳은 분명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이 됨에 부족함이없을
것이다.

또한 하나의 도시를 관통하는 공연장으로서 그자체가 공원이 되고 축제의 장이 되는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다.






공연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시작된 우리의 디자인 안은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가 틀렸을 수도, 말도 안되는 짓들을 하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고민하고 상상하며 그것을 실현하기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게 될 A(당연하게 생각될 진리들)를 위해 바로 이곳, 현재 안에서 B를
찾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BY Doroomuk



2011년 8월 3일 수요일

It's not a Cinema의 의미와 그 사업적 의의

지난 7월 1일. 두 번에 걸친 연기 후, 우여곡절 끝에 It's not a Cinema #1 - 이한철 on RUF 촬영공연이 열렸다. 공연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좋았으며, 현재 영상 편집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공연에 관심 있어하는 분들, 공연에 오셨던 분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씀들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수익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It's not a Cinema공연은 단 25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게다가 오고 싶다고 신청하신 분들 숫자에 비례해서 기부금도 쌓인다.

결국 사람들의 질문은 이거다.

"나야 좋지요. 신청만 해도 기부금 쌓이고, 공짜로 실력있는 가수의 공연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관객이 25명밖에 없으니 선택받은 느낌이었고요. 정말 다 좋아요. 그런데, 당신들 먹고 살 수는 있어요?"

결론? 먹고 살 수 없다. 현재로서는.
그럼 우리는 왜 이것을 했을까? 게다가 시리즈로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려고 하는가?


"It's not a Cinema"의 의미


It's not a Cinema.
사실, 이 프로젝트는 공연 프로젝트가 아니다. 공연과 결합된, 새로운 공연 촬영 방식의 영상 프로젝트다.

이번 영상 촬영팀은 영화 촬영팀이었다. 영상 촬영에 대한 컨셉 회의만 수차례에 걸쳐서 했다. 지난 두 번의 진경환 군의 포스트( http://blog.cuintheb.com/2011/05/2.html )에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현재 영상 편집이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초안을 보았다. 좋았다. 분명 기존의 영상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상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는 거기까지다. 좋으면서 기존 영상과는 다르다. 끝.
영상 촬영팀이나, 영상에 대하여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영화감독 모두 좋다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실제로 영상 전문가들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나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뭔가 좀 다르고, 그냥 조금 더 좋을 뿐이다.

이게 왠 자폭이냐고? 그냥 솔직할 뿐이다.
하지만 1%의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처음부터, It's not a Cinema가 영상 프로젝트라고 인식하는 것은 내부용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 프로젝트는 분명 공연 프로젝트다. 그리고, It's not a Cinema #1 - 이한철 on RUF 공연은, 공연으로서 분명 좋았다.

응?
앞에서는 분명 공연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하고, 다시 이번에는 공연 프로젝트라고?
뭔가 이상하다고??

그게 바로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느낌 중 하나다.
그래서 프로젝트 제목이 It's not a Cinema인 것이다.


사업적 실험


It's not a Cinema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영화에 닿아있는 공연에 대한 실험. 그리고 공연의 가치 판단에 대한 실험.

우리는 공연의 가치가 티켓의 가격 및 수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현 상황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다.

그렇다면 티켓을 제외하고 공연의 가치를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서 우리가 첫번째로 선택한 것은 바로 "기대감"이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클수록 공연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기대감"을 생성할 수 있어야 했고,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으며, "기대감"에 대한 측정 기준이 필요했다.

"기대감"을 생성하려면 이전 공연에 대한 참고자료가 필요했다.
물론, 공연 연출을 봉준호 감독이 한다고 하면 이전 자료 필요없다. 하지만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떠나, 우리는 아티스트에 관계없이 It's not a Cinema라는 프로젝트 자체로 기대감을 민들어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공연은 일회성이 아닌 시리즈물로 가야했다.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한 것은 영상이다.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그 공연에 오지 않고도 그 공연이 재미있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영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그 어떤 좋은 미사여구로 꾸미는 것보다 이전에 있었던 공연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영상이 어떻게 하면 공연의 감동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바로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인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생성하고 높인 "기대감"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답은 트위터에 의한 공연 관람 신청이다. 물론, 트위터라는 툴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첫 단계에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툴이기에 트위터가 선택되었다. 트위터를 통해 공연관람 신청을 받으면, "기대감"에 비례하여 신청자 수가 변동될 것이라 가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공연 후 공개되는 영상의 노출 수도 "기대감"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성되고, 높아지고, 측정된 "기대감"으로 공연의 가치를 평가받겠다는 것이 바로 It's not a Cinema의 사업적 실험이다.


그럼 대중에게는 어떤 효용이?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나야 좋지요. 신청만 해도 기부금 쌓이고, 공짜로 실력있는 가수의 공연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관객이 25명밖에 없으니 선택받은 느낌이었고요. 정말 다 좋아요."


첫번째 프로젝트로서의 It's not a Cinema


IN THE B의 첫번째 프로젝트로서의 It's not a Cinema는 솔직히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이유는, 첫번째 프로젝트부터 너무 실험적이라서랄까.
It's not a Cinema는 우리의 전문 분야(공연)가 아닌 영상에 대한 비중이 높다. 게다가 사업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실험적이다. 그러다보니 첫번째 프로젝트부터 너무 힘들었다 ^^;;;;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 끌고 갈 시리즈가 솔직히 버겁긴 하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던가.
어차피 우리가 하려고 하는, 실험적이지만 대중적인 프로젝트들은 그 어느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by chieh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