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다짜고짜 영상 하나 보고 시작하자.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농구공을 몇번 패스하는지 세어보면 된다.
이 영상은 굉장히 유명한 영상으로 아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을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이 테스트를 처음 접했을 때를 떠올려 주기 바란다.
고릴라를 보았는가? 솔직히, 나는 봤다. 하지만 경환군은 보지 못했다.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거나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다. 지극히 정상이다.
이 실험은 불완전한 우리의 인지능력에 대한 실험이다.(이 실험에 대해 더 궁금한 사람은 http://www.theinvisiblegorilla.com 를 방문하거나, [보이지 않는 고릴라] 라는 책을 보기 바란다)
이 실험에서 약 50%의 사람들은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지한다. 인지 자체가 보는대로 되지 못하니, 기억은 더더욱 사실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다.
오늘 이 실험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책에 대한 내용을 쓰고자 함은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우리의 인지 능력 결함이, 우리가 평소에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가 힘든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고릴라는 새로운 기회
새로운 생각, 새로운 Trend, 알지 못했던 불편함 등… 우리는 이러한 것을 찾아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것들을 찾아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잘 생각해보자. 성공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새로운 생각이나 제품들을 보고
"이야… 진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런게 세상에 있었어?"
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얼마나 되는가?
사실 별로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생각들은 대부분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부류가 아니다. 대부분은 이미 현실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을 누군가가 인지하여 그것을 현실화 시킨 것이다.
우리 눈 앞에서 유유히 걸어나와, 가슴까지 두드리고 들어간 고릴라가 바로 이런 아이디어나 생각이 아닐까?
어쩌면, 세상의 새로운 가능성들은 이미 우리 눈 앞에서 자기들을 봐달라고, 아니 자기들을 인지해달라고 손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릴라를 보는 법
그렇다면, 그러한 기회들을 잘 알아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연구를 수행했을 때, 참가자들이 예외사항이 나타나리란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 다 고릴라를 발견했다고 한다. 예외상황 자체가 집중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예외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외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다보면 정작 중요한 일에서는 주의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p.63)
예를 들면, TV프로 중에 옥의 티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다.(지금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평소에 TV나 영화를 보면서 옥의 티를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보면, 우리는 정작 TV나 영화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해결책은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할 필요가 없을 때, 즉 이동 중이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혹은 잠시 쉴 때,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려보고 생각을 바꿔보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오늘 출퇴근하면서 떨어지는 낙엽을 본 적이, 아니 인지한 적이 있는가? 내일 낙엽을 생각하면서 길을 걸어보라.
맥주병에 써있는 "19세 미만 판매금지" 란 문구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 문구는 19세 미만은 맥주를 판매할 수 없다는 의미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심지가 곧은 놈"의 심지는 초의 심지인가? 초의 심지라면 실은 힘이 없어서 곧게 뻗어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궁금하면 한번 찾아보시라. 어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함께 있던 6명 모두 저 심지의 정체를 몰랐었다. 창피하지만.)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세상엔 고릴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실험의 연구자들은 이런 얘기를 했다.
"대상의 시각적 독특함보다는 당신이 내리는 순간순간의 예상에 따라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못 볼지가 결정되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고릴라] p.39)
즉, 우리가 다른 것을 보고자,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자 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기회가 우리 눈 앞에 있어도 우리는 그걸 알아챌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 실험의 두번째 버전 영상을 보자.
고릴라를 봤다고 좋아하다가 뒤통수 맞았는가? 고릴라 한마리 찾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세상엔 수 많은 고릴라가 있고, 게다가 세상에는 고릴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by Chiehwan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OISTAT 극장 건축 공모전 그리고 THE HOUSE IS NOT A HOME!
2011년 4월, OISTAT이란 단체에서 4년에 한번씩 주최하는 극장건축 공모전이 열렸다.
올해는 실제 프라하에 위치한 작은 교회를 '어떤 특정한 공연'을 진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재건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상 공연장 건축 아이디어 공모전이었고, 세계 44개국의 많은 건축가, 디자이너, 공연기획자들이 참가하였다.
IN THE B 도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2명의 건축가- Kyung jae Kim, Hoang Nguyen 님들과 함께 콜라보하여 이 공모전에 참가했다. 결론적으로 입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특정한 공연을 위한 (무용,연극,발레,미디어아트 등) 공연장' 에 대한 건축적, 미술적인 관점의 디자인들이 대부분 이었던 입상작들과는 달리 개념적인 관점에서의 공연 그리고 공연장 디자인을 하고자했던 우리의 상상해봄직한 시도가 가여워서(?) 이렇게나마 포스트를 올린다ㅠ
위와 같은 작품들이 올해의 수상작들이다. 최근의 화두인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연장부터 무용, 연극, 음악공연, 파티를 할 수 있는 공연장까지- 다양한 미학적 아이디어들이 본 공모전에 선보여졌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들도 다음과 같았다.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관객과 무대사이의 물리적인 새로운 접근, 관객에 의해 생성되는 공간들.
그러나 생각의 머리를 틀게된 건, 위와 같은 아이디어들은 꼭 '프라하의 작은 마을의 그 교회'가 아니더라도 실행될 수 있는, 혹은 상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란 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그 교회만 가질 수 있는 극장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 에 들어섰을 때 그 곳이 밖과 다른 차원의 무대가 되는 공간(공연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 아닌 교회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극장!
바로 이것을 실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연극의 시대를 거쳐온 현재의 일반적인 공연무대 즉, 무대 안이 특정한 공간으로 '잘' 꾸며지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 실감나는 원근법, 조명 등을 사용하는 것(예를 들면 드라마세트장 처럼) 보다 실제로 그 무대가 되려고 하는 특정한 공간에서 직접 공연을 하는 것(수원성 성벽에 기대서 '변방의 북소리(by 유머일번지)'를 하는 것 혹은 경희궁 마루에서 명성왕후를 공연하는 것 같은)이 더 현실감 있는 공연인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스트리아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의 < everyman >(1920) 이었다.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이 공연은 세트로 구성되었을 성당을 대신하여, 실제의 성당 앞에서 공연을 하게된다. 그것으로 인해 < everyman > 은 더욱 '있을 법' 해졌으며,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번 인용했던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을 다시한번 소개하겠다. 그의 저서 <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른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 만의 어떤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마치 배우라는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것 처럼 연극적이라고 했으며,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공간을 마치 커다란 공연무대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공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결국 공연이라는 것은 <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수한 사건'의 관찰 > 이 결코 아니며 우리생활과 아주 밀접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커피숍에 앉아서 어떠한 무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잠깐 씩 들려오는 이야기 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그럴 때 나는 나름대로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의 공간을 가상의 프레임으로 가두고, 어디선가 지켜보는 하나의 관객이 되어본다- 이것이 아주 재밌는 연극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어지는 하나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연무대에 존재하는 배우임과 동시에 관객인 것이다.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주방이 보이는 중국집이 있다고 가정하자(주방장의 요리모습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갑자기 그 주방장이 면을 때리기 시작한다.(그 곳은 수타짜장면이 유명하다.) 절묘하고 예술적인 움직임, 칠 때 마다 심금을 울리는 공명- 우리는 이것을 공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식적으로의 공연이 아니었던 순간에도 나는 저 위에 보이는 성당을 지나고 있을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있을 수도 있었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멀리 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을 수 있었다.
자, 지금의 나와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 저 위의 그림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을 응시하는 저 누군가 : 배우1과 배우2가 대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 결론적으로 이 두개의 상황은 똑같다 왜냐하면 단순하게도 연극은 현실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공연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현실은 재현되어질 만큼 아주 연극적이다.
그래서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질 법한 어떤 행위들을 모방한 재현들은 매우 '있을 법'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재미있는 공연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떤 공간에서 벌어질 만한 특수한 상황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인지 공연인지 햇갈리는 경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리처드 쉐크너(뉴욕대 공연학 교수)는 그의 퍼포먼스 이론에서 공연이 사람들의 상상을 가로막는 공연장이 아닌 극장 밖, 즉 병원, 공원, 놀이터 등 에서 재현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연극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형식 속에 고프만의 연극적 사회학이 결합되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준비된 관객이 아닌 일반사람들이 현실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현의 공간(공연의 공간)의 관객이 되버리는 것 - 분명 재미있는 상황이다.
THE HOUSE IS NOT A HOME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THE HOUSE IS NOT A HOME (가제) 이라고 하기로 했다. 다시말해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집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재현들 - 현실과 공연 사이에 존재하는 - 을 통해서 결국 집에 있는 것이 아닌(집에서 벌어질 법한 공연의 공간에 있었던 것 이었음)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S사의 아파트를 판매/홍보하는 모델하우스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집을 구경하고 살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렇게 모델하우스에 들어선 사람들은 실제로 집처럼 되어있는 한 공간의 쇼파에 앉아 태연하게 신문을 보는 어떤 중년 남자를 발견한다.....미친사람일까?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갑자기 "여보 밥아직 멀었어?" 라고 말한다. 이 때 주방에서 부터 따뜻한 음식을 들고 등장하는 아줌마.. 그 옆으로 또 다른 집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한남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 거린다. 처음에 콧노래로 시작된 음악은 아까 다른 공간의 식사를 막 하려는 부부의 딸이 리코더 연습을 하기위해 마루로 등장하면서 흥미로워진다. 현실공간에서는 옆집의 콧노래와 앞집의 리코더 소리가 하모니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비현실적 재현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미 모델하우스가 아닌 모델하우스에서 재현될 수 있는 공연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아파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공연적 재현을 위해 몇가지 주의해야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는 공연은 시작과 끝이 없는 즉, 언제 어디서부터 보기를 시작하더라도 이해되어야한다. 왜냐하면 관객은 처음부터 관객이 아니어야 하고, 관객은 언제든지 공연으로 부터 분리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재현을 위해 소리와 시각, 이미지를 완벽하게 통제해야한다. 재현의 공간이 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비현실적 현실감이 우리를 장악해야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연은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운 재현이어야 한다. 관객을 관객으로 끊임없이 유지시키는 것은 공연이 가진 이야기구조 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탈텍스트적인 다양한 시도가 요구 되어진다.
위의 세가지 점을 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된다면, 어떠한 공간에서라도 - 영화관, 커피숍, 횡단보도, 병원, 은행 , 기차역 - THE HOUSE IS NOT A HOME 은 가능하다.
실제로 INTHEB는 얼마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 음악, 춤, 그리고 비디오아트가 연결된 어떤 하나의 재현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THE HOUSE IS NOT A HOME 의 추후 블로깅을 통해서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고있는지, 이것과 플래쉬몹 또는 해프닝과의 차이점, 수익을 내는 방식 등에 대해서 정리할 생각이다.
자 이제 다시 건축공모전으로 돌아가보겠다. 위에서 언급된 연극적 사회학에 바탕을 두고 또 하나의 재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이 보이지 않는 벽은 8층 건물의 모텔을 무심코 보다가 떠올리게 되었는데, 단순히 저기 있는 모텔 안 을 훔쳐보고 싶어서 한쪽 벽이 보이지않는 투명벽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투명벽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마치 각각의 우리 안에 갇힌 짐승들이 짝짓기를 하는모습처럼 보이거나 혹은 닭들이 빼곡히 앉아 알을 낳는 양계장처럼 보일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않는 벽'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한번 살펴보자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그곳에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있다. 티비를 보는 가족, 싸우는 커플, 사랑하는 연인, 눈물을 흘리는 형제들, 불이 켜진 집, 불이 꺼진 집, 붉은 벽지를 바른 집,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
단지 하나의 공간(한 집)만으로도 매우 드라마적인 한편의 공연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수백개가 한 군데 모여 있는 공간(아파트)이라니!
마치 한쪽 벽을 잘라내서 우리가 그것을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다면 "이건 공연으로써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재밌는 것은 '보이지않는 벽'의 가정에 의해서 우리(관객)는 아파트 전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지만 정작 각 각의 공간들 서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각각의 방 안에 존재하는 드라마들이 재밌는 연극적 아이디어를 통해 연결되고 해체될 때 그 벽을 통해 보이는 100개의 방은 우리에게 하나의 큰 방,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공연으로 보여질 수 있게 된다.
위에서 회색지붕의 건물이 바로 그 교회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그 안에 각 공간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응집된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도록) 연결되어있는 다른 건물들과 한꺼번에 잘라내고 그곳에 객석을 넣어보았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보이지않는 벽' 이 있는 그대로의 교회가 되며, 교회 안 에서는 일상과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하고 밥을 먹고 계단을 오르내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행해지고, 보여지는' 하나의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간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가운데, 위에서 언급했던 비현실적, 다시말해 연극적 장치들을 계속 해서 그 속에 심어놓는 것이다. 우연처럼 가장된 비현실적 장치들. 바로 상황에 따른 연결과 분리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으나 그들은 그럴 수 없다는 설정이기에 더욱 비현실적인 소리의 하모니들,
이 외에도 색깔, 움직임 등 다양한 분리와 연결을 통해 전체 공간을 연극적인 공간으로 전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십개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 그것들이 때로는 연결되고
때로는 분리되며 통합되었다가 해체되는 하나의 이미지-
이곳은 분명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이 됨에 부족함이없을
것이다.
또한 하나의 도시를 관통하는 공연장으로서 그자체가 공원이 되고 축제의 장이 되는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다.
공연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시작된 우리의 디자인 안은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가 틀렸을 수도, 말도 안되는 짓들을 하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고민하고 상상하며 그것을 실현하기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게 될 A(당연하게 생각될 진리들)를 위해 바로 이곳, 현재 안에서 B를
찾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BY Doroomuk
올해는 실제 프라하에 위치한 작은 교회를 '어떤 특정한 공연'을 진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재건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상 공연장 건축 아이디어 공모전이었고, 세계 44개국의 많은 건축가, 디자이너, 공연기획자들이 참가하였다.
IN THE B 도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2명의 건축가- Kyung jae Kim, Hoang Nguyen 님들과 함께 콜라보하여 이 공모전에 참가했다. 결론적으로 입상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특정한 공연을 위한 (무용,연극,발레,미디어아트 등) 공연장' 에 대한 건축적, 미술적인 관점의 디자인들이 대부분 이었던 입상작들과는 달리 개념적인 관점에서의 공연 그리고 공연장 디자인을 하고자했던 우리의 상상해봄직한 시도가 가여워서(?) 이렇게나마 포스트를 올린다ㅠ
위와 같은 작품들이 올해의 수상작들이다. 최근의 화두인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연장부터 무용, 연극, 음악공연, 파티를 할 수 있는 공연장까지- 다양한 미학적 아이디어들이 본 공모전에 선보여졌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아이디어들도 다음과 같았다.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 또는 관객과 무대사이의 물리적인 새로운 접근, 관객에 의해 생성되는 공간들.
그러나 생각의 머리를 틀게된 건, 위와 같은 아이디어들은 꼭 '프라하의 작은 마을의 그 교회'가 아니더라도 실행될 수 있는, 혹은 상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란 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그 교회만 가질 수 있는 극장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 에 들어섰을 때 그 곳이 밖과 다른 차원의 무대가 되는 공간(공연을 위해 준비된 공간)이 아닌 교회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극장!
바로 이것을 실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연극의 시대를 거쳐온 현재의 일반적인 공연무대 즉, 무대 안이 특정한 공간으로 '잘' 꾸며지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 실감나는 원근법, 조명 등을 사용하는 것(예를 들면 드라마세트장 처럼) 보다 실제로 그 무대가 되려고 하는 특정한 공간에서 직접 공연을 하는 것(수원성 성벽에 기대서 '변방의 북소리(by 유머일번지)'를 하는 것 혹은 경희궁 마루에서 명성왕후를 공연하는 것 같은)이 더 현실감 있는 공연인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스트리아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 의 < everyman >(1920) 이었다.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이 공연은 세트로 구성되었을 성당을 대신하여, 실제의 성당 앞에서 공연을 하게된다. 그것으로 인해 < everyman > 은 더욱 '있을 법' 해졌으며,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번 인용했던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을 다시한번 소개하겠다. 그의 저서 <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른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 만의 어떤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마치 배우라는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것 처럼 연극적이라고 했으며,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공간을 마치 커다란 공연무대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공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결국 공연이라는 것은 <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수한 사건'의 관찰 > 이 결코 아니며 우리생활과 아주 밀접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커피숍에 앉아서 어떠한 무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잠깐 씩 들려오는 이야기 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그럴 때 나는 나름대로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의 공간을 가상의 프레임으로 가두고, 어디선가 지켜보는 하나의 관객이 되어본다- 이것이 아주 재밌는 연극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어지는 하나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연무대에 존재하는 배우임과 동시에 관객인 것이다.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주방이 보이는 중국집이 있다고 가정하자(주방장의 요리모습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갑자기 그 주방장이 면을 때리기 시작한다.(그 곳은 수타짜장면이 유명하다.) 절묘하고 예술적인 움직임, 칠 때 마다 심금을 울리는 공명- 우리는 이것을 공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형식적으로의 공연이 아니었던 순간에도 나는 저 위에 보이는 성당을 지나고 있을 수 있었다. 춤을 추고 있을 수도 있었고,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멀리 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을 수 있었다.
자, 지금의 나와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 저 위의 그림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것을 응시하는 저 누군가 : 배우1과 배우2가 대사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 결론적으로 이 두개의 상황은 똑같다 왜냐하면 단순하게도 연극은 현실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식적인 공연이 아니었더라도 이미 현실은 재현되어질 만큼 아주 연극적이다.
그래서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질 법한 어떤 행위들을 모방한 재현들은 매우 '있을 법'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재미있는 공연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떤 공간에서 벌어질 만한 특수한 상황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인지 공연인지 햇갈리는 경계 속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리처드 쉐크너(뉴욕대 공연학 교수)는 그의 퍼포먼스 이론에서 공연이 사람들의 상상을 가로막는 공연장이 아닌 극장 밖, 즉 병원, 공원, 놀이터 등 에서 재현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연극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형식 속에 고프만의 연극적 사회학이 결합되면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
실제로 준비된 관객이 아닌 일반사람들이 현실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현의 공간(공연의 공간)의 관객이 되버리는 것 - 분명 재미있는 상황이다.
THE HOUSE IS NOT A HOME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THE HOUSE IS NOT A HOME (가제) 이라고 하기로 했다. 다시말해 우리는 우리가 당연히 집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재현들 - 현실과 공연 사이에 존재하는 - 을 통해서 결국 집에 있는 것이 아닌(집에서 벌어질 법한 공연의 공간에 있었던 것 이었음)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S사의 아파트를 판매/홍보하는 모델하우스가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집을 구경하고 살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렇게 모델하우스에 들어선 사람들은 실제로 집처럼 되어있는 한 공간의 쇼파에 앉아 태연하게 신문을 보는 어떤 중년 남자를 발견한다.....미친사람일까?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갑자기 "여보 밥아직 멀었어?" 라고 말한다. 이 때 주방에서 부터 따뜻한 음식을 들고 등장하는 아줌마.. 그 옆으로 또 다른 집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한남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그는 콧노래를 흥얼 거린다. 처음에 콧노래로 시작된 음악은 아까 다른 공간의 식사를 막 하려는 부부의 딸이 리코더 연습을 하기위해 마루로 등장하면서 흥미로워진다. 현실공간에서는 옆집의 콧노래와 앞집의 리코더 소리가 하모니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비현실적 재현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미 모델하우스가 아닌 모델하우스에서 재현될 수 있는 공연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아파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관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공연적 재현을 위해 몇가지 주의해야할 사항들이 있다.
첫째는 공연은 시작과 끝이 없는 즉, 언제 어디서부터 보기를 시작하더라도 이해되어야한다. 왜냐하면 관객은 처음부터 관객이 아니어야 하고, 관객은 언제든지 공연으로 부터 분리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재현을 위해 소리와 시각, 이미지를 완벽하게 통제해야한다. 재현의 공간이 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비현실적 현실감이 우리를 장악해야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공연은 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운 재현이어야 한다. 관객을 관객으로 끊임없이 유지시키는 것은 공연이 가진 이야기구조 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탈텍스트적인 다양한 시도가 요구 되어진다.
위의 세가지 점을 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된다면, 어떠한 공간에서라도 - 영화관, 커피숍, 횡단보도, 병원, 은행 , 기차역 - THE HOUSE IS NOT A HOME 은 가능하다.
실제로 INTHEB는 얼마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 음악, 춤, 그리고 비디오아트가 연결된 어떤 하나의 재현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THE HOUSE IS NOT A HOME 의 추후 블로깅을 통해서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고있는지, 이것과 플래쉬몹 또는 해프닝과의 차이점, 수익을 내는 방식 등에 대해서 정리할 생각이다.
자 이제 다시 건축공모전으로 돌아가보겠다. 위에서 언급된 연극적 사회학에 바탕을 두고 또 하나의 재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이 보이지 않는 벽은 8층 건물의 모텔을 무심코 보다가 떠올리게 되었는데, 단순히 저기 있는 모텔 안 을 훔쳐보고 싶어서 한쪽 벽이 보이지않는 투명벽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투명벽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마치 각각의 우리 안에 갇힌 짐승들이 짝짓기를 하는모습처럼 보이거나 혹은 닭들이 빼곡히 앉아 알을 낳는 양계장처럼 보일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않는 벽'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한번 살펴보자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그곳에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있다. 티비를 보는 가족, 싸우는 커플, 사랑하는 연인, 눈물을 흘리는 형제들, 불이 켜진 집, 불이 꺼진 집, 붉은 벽지를 바른 집,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
단지 하나의 공간(한 집)만으로도 매우 드라마적인 한편의 공연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수백개가 한 군데 모여 있는 공간(아파트)이라니!
마치 한쪽 벽을 잘라내서 우리가 그것을 모두 보고 들을 수 있다면 "이건 공연으로써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재밌는 것은 '보이지않는 벽'의 가정에 의해서 우리(관객)는 아파트 전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있지만 정작 각 각의 공간들 서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설정이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각각의 방 안에 존재하는 드라마들이 재밌는 연극적 아이디어를 통해 연결되고 해체될 때 그 벽을 통해 보이는 100개의 방은 우리에게 하나의 큰 방,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공연으로 보여질 수 있게 된다.
위에서 회색지붕의 건물이 바로 그 교회이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게( 그 안에 각 공간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응집된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도록) 연결되어있는 다른 건물들과 한꺼번에 잘라내고 그곳에 객석을 넣어보았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보이지않는 벽' 이 있는 그대로의 교회가 되며, 교회 안 에서는 일상과 똑같이 예배를 드리고 고해성사를 하고 밥을 먹고 계단을 오르내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행해지고, 보여지는' 하나의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공간에서 현실을 재현하는 가운데, 위에서 언급했던 비현실적, 다시말해 연극적 장치들을 계속 해서 그 속에 심어놓는 것이다. 우연처럼 가장된 비현실적 장치들. 바로 상황에 따른 연결과 분리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으나 그들은 그럴 수 없다는 설정이기에 더욱 비현실적인 소리의 하모니들,
이 외에도 색깔, 움직임 등 다양한 분리와 연결을 통해 전체 공간을 연극적인 공간으로 전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십개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 그것들이 때로는 연결되고
때로는 분리되며 통합되었다가 해체되는 하나의 이미지-
이곳은 분명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인 공간이 됨에 부족함이없을
것이다.
또한 하나의 도시를 관통하는 공연장으로서 그자체가 공원이 되고 축제의 장이 되는 공간으로 상상할 수 있다.
공연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시작된 우리의 디자인 안은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가 틀렸을 수도, 말도 안되는 짓들을 하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고민하고 상상하며 그것을 실현하기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게 될 A(당연하게 생각될 진리들)를 위해 바로 이곳, 현재 안에서 B를
찾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BY Doroomuk
2011년 8월 3일 수요일
It's not a Cinema의 의미와 그 사업적 의의
지난 7월 1일. 두 번에 걸친 연기 후, 우여곡절 끝에 It's not a Cinema #1 - 이한철 on RUF 촬영공연이 열렸다. 공연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보다도 좋았으며, 현재 영상 편집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공연에 관심 있어하는 분들, 공연에 오셨던 분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씀들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수익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It's not a Cinema공연은 단 25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게다가 오고 싶다고 신청하신 분들 숫자에 비례해서 기부금도 쌓인다.
결국 사람들의 질문은 이거다.
"나야 좋지요. 신청만 해도 기부금 쌓이고, 공짜로 실력있는 가수의 공연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관객이 25명밖에 없으니 선택받은 느낌이었고요. 정말 다 좋아요. 그런데, 당신들 먹고 살 수는 있어요?"
결론? 먹고 살 수 없다. 현재로서는.
그럼 우리는 왜 이것을 했을까? 게다가 시리즈로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려고 하는가?
"It's not a Cinema"의 의미
It's not a Cinema.
사실, 이 프로젝트는 공연 프로젝트가 아니다. 공연과 결합된, 새로운 공연 촬영 방식의 영상 프로젝트다.
이번 영상 촬영팀은 영화 촬영팀이었다. 영상 촬영에 대한 컨셉 회의만 수차례에 걸쳐서 했다. 지난 두 번의 진경환 군의 포스트( http://blog.cuintheb.com/2011/05/2.html )에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현재 영상 편집이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초안을 보았다. 좋았다. 분명 기존의 영상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상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는 거기까지다. 좋으면서 기존 영상과는 다르다. 끝.
영상 촬영팀이나, 영상에 대하여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영화감독 모두 좋다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실제로 영상 전문가들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나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뭔가 좀 다르고, 그냥 조금 더 좋을 뿐이다.
이게 왠 자폭이냐고? 그냥 솔직할 뿐이다.
하지만 1%의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처음부터, It's not a Cinema가 영상 프로젝트라고 인식하는 것은 내부용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 프로젝트는 분명 공연 프로젝트다. 그리고, It's not a Cinema #1 - 이한철 on RUF 공연은, 공연으로서 분명 좋았다.
응?
앞에서는 분명 공연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하고, 다시 이번에는 공연 프로젝트라고?
뭔가 이상하다고??
그게 바로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느낌 중 하나다.
그래서 프로젝트 제목이 It's not a Cinema인 것이다.
사업적 실험
It's not a Cinema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영화에 닿아있는 공연에 대한 실험. 그리고 공연의 가치 판단에 대한 실험.
우리는 공연의 가치가 티켓의 가격 및 수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현 상황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다.
그렇다면 티켓을 제외하고 공연의 가치를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서 우리가 첫번째로 선택한 것은 바로 "기대감"이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클수록 공연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기대감"을 생성할 수 있어야 했고,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으며, "기대감"에 대한 측정 기준이 필요했다.
"기대감"을 생성하려면 이전 공연에 대한 참고자료가 필요했다.
물론, 공연 연출을 봉준호 감독이 한다고 하면 이전 자료 필요없다. 하지만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떠나, 우리는 아티스트에 관계없이 It's not a Cinema라는 프로젝트 자체로 기대감을 민들어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공연은 일회성이 아닌 시리즈물로 가야했다.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한 것은 영상이다.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그 공연에 오지 않고도 그 공연이 재미있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영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그 어떤 좋은 미사여구로 꾸미는 것보다 이전에 있었던 공연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영상이 어떻게 하면 공연의 감동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바로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인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생성하고 높인 "기대감"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답은 트위터에 의한 공연 관람 신청이다. 물론, 트위터라는 툴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첫 단계에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툴이기에 트위터가 선택되었다. 트위터를 통해 공연관람 신청을 받으면, "기대감"에 비례하여 신청자 수가 변동될 것이라 가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공연 후 공개되는 영상의 노출 수도 "기대감"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성되고, 높아지고, 측정된 "기대감"으로 공연의 가치를 평가받겠다는 것이 바로 It's not a Cinema의 사업적 실험이다.
그럼 대중에게는 어떤 효용이?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나야 좋지요. 신청만 해도 기부금 쌓이고, 공짜로 실력있는 가수의 공연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관객이 25명밖에 없으니 선택받은 느낌이었고요. 정말 다 좋아요."
첫번째 프로젝트로서의 It's not a Cinema
IN THE B의 첫번째 프로젝트로서의 It's not a Cinema는 솔직히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이유는, 첫번째 프로젝트부터 너무 실험적이라서랄까.
It's not a Cinema는 우리의 전문 분야(공연)가 아닌 영상에 대한 비중이 높다. 게다가 사업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실험적이다. 그러다보니 첫번째 프로젝트부터 너무 힘들었다 ^^;;;;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 끌고 갈 시리즈가 솔직히 버겁긴 하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던가.
어차피 우리가 하려고 하는, 실험적이지만 대중적인 프로젝트들은 그 어느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by chiehwan
공연에 관심 있어하는 분들, 공연에 오셨던 분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씀들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수익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It's not a Cinema공연은 단 25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게다가 오고 싶다고 신청하신 분들 숫자에 비례해서 기부금도 쌓인다.
결국 사람들의 질문은 이거다.
"나야 좋지요. 신청만 해도 기부금 쌓이고, 공짜로 실력있는 가수의 공연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관객이 25명밖에 없으니 선택받은 느낌이었고요. 정말 다 좋아요. 그런데, 당신들 먹고 살 수는 있어요?"
결론? 먹고 살 수 없다. 현재로서는.
그럼 우리는 왜 이것을 했을까? 게다가 시리즈로 앞으로도 계속 진행하려고 하는가?
"It's not a Cinema"의 의미
It's not a Cinema.
사실, 이 프로젝트는 공연 프로젝트가 아니다. 공연과 결합된, 새로운 공연 촬영 방식의 영상 프로젝트다.
이번 영상 촬영팀은 영화 촬영팀이었다. 영상 촬영에 대한 컨셉 회의만 수차례에 걸쳐서 했다. 지난 두 번의 진경환 군의 포스트( http://blog.cuintheb.com/2011/05/2.html )에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현재 영상 편집이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초안을 보았다. 좋았다. 분명 기존의 영상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상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는 거기까지다. 좋으면서 기존 영상과는 다르다. 끝.
영상 촬영팀이나, 영상에 대하여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영화감독 모두 좋다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실제로 영상 전문가들에게는 많은 차이가 있나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뭔가 좀 다르고, 그냥 조금 더 좋을 뿐이다.
이게 왠 자폭이냐고? 그냥 솔직할 뿐이다.
하지만 1%의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법이다.
처음부터, It's not a Cinema가 영상 프로젝트라고 인식하는 것은 내부용이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 프로젝트는 분명 공연 프로젝트다. 그리고, It's not a Cinema #1 - 이한철 on RUF 공연은, 공연으로서 분명 좋았다.
응?
앞에서는 분명 공연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하고, 다시 이번에는 공연 프로젝트라고?
뭔가 이상하다고??
그게 바로 이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는 느낌 중 하나다.
그래서 프로젝트 제목이 It's not a Cinema인 것이다.
사업적 실험
It's not a Cinema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영화에 닿아있는 공연에 대한 실험. 그리고 공연의 가치 판단에 대한 실험.
우리는 공연의 가치가 티켓의 가격 및 수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현 상황에 대하여 불만이 있었다.
그렇다면 티켓을 제외하고 공연의 가치를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서 우리가 첫번째로 선택한 것은 바로 "기대감"이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클수록 공연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기대감"을 생성할 수 있어야 했고,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으며, "기대감"에 대한 측정 기준이 필요했다.
"기대감"을 생성하려면 이전 공연에 대한 참고자료가 필요했다.
물론, 공연 연출을 봉준호 감독이 한다고 하면 이전 자료 필요없다. 하지만 우리는 봉준호 감독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떠나, 우리는 아티스트에 관계없이 It's not a Cinema라는 프로젝트 자체로 기대감을 민들어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공연은 일회성이 아닌 시리즈물로 가야했다.
"기대감"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한 것은 영상이다.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그 공연에 오지 않고도 그 공연이 재미있겠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영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던가. 그 어떤 좋은 미사여구로 꾸미는 것보다 이전에 있었던 공연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영상이 어떻게 하면 공연의 감동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바로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인 것이다.
그럼, 이렇게 생성하고 높인 "기대감"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답은 트위터에 의한 공연 관람 신청이다. 물론, 트위터라는 툴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우리가 첫 단계에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툴이기에 트위터가 선택되었다. 트위터를 통해 공연관람 신청을 받으면, "기대감"에 비례하여 신청자 수가 변동될 것이라 가정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공연 후 공개되는 영상의 노출 수도 "기대감"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성되고, 높아지고, 측정된 "기대감"으로 공연의 가치를 평가받겠다는 것이 바로 It's not a Cinema의 사업적 실험이다.
그럼 대중에게는 어떤 효용이?
앞에서 말하지 않았나.
"나야 좋지요. 신청만 해도 기부금 쌓이고, 공짜로 실력있는 가수의 공연도 볼 수 있고. 그리고 실제로 보니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관객이 25명밖에 없으니 선택받은 느낌이었고요. 정말 다 좋아요."
첫번째 프로젝트로서의 It's not a Cinema
IN THE B의 첫번째 프로젝트로서의 It's not a Cinema는 솔직히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이유는, 첫번째 프로젝트부터 너무 실험적이라서랄까.
It's not a Cinema는 우리의 전문 분야(공연)가 아닌 영상에 대한 비중이 높다. 게다가 사업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실험적이다. 그러다보니 첫번째 프로젝트부터 너무 힘들었다 ^^;;;;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 끌고 갈 시리즈가 솔직히 버겁긴 하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했던가.
어차피 우리가 하려고 하는, 실험적이지만 대중적인 프로젝트들은 그 어느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by chiehwan
2011년 6월 25일 토요일
볼만한 운영메뉴얼을 만들어보자
이번 일요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It's not a Cinema #1 이한철 on RUF 가 우천 및 태풍 예보로 인하여 다시한번 연기되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물론, 이런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사실은,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스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일 듯 ^^;;), 비 조금 와도 위에 뭐 가리고 공연 하던지, 아니면 그냥 실내로 옮겨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두 번이나 연기하면서까지 비가 오면 취소(혹은 연기)라는 것을 고집해야 하냐고.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상촬영이다. 모든 연출과 현장 운영은 영상에 맞추어져있다. 따라서, 영상에 맞추어진 연출을 무시하고 비를 막기 위해 천막를 친다던지, 실내로 옮겨서 한다던지 하게되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두 번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상황을 이해해주고 아무 불만 없이(정말 없는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들어온 불만은 없다… 고 믿고 싶다 ㅠ.ㅠ) 일정을 조정해 주시는 모든 스텝과 한철 형님께 감사드린다.
아무튼, 다시한번 연기가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로 시도한 운영메뉴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운영메뉴얼이 책 한권?
일반적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올리다보면, 소위 '운영메뉴얼'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보기도 하고 만들어보기도 했다.
지금까지 접해본, 그리고 직접 만들어 보았던 운영메뉴얼들을 볼 때마다 참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하게 작성되는 운영메뉴얼은 공연 한 번에 아예 책 한권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하이서울페스티벌같이 관에서 주도하는 페스티벌들은 의무적으로 운영메뉴얼을 만들도록 요청하고 있으며, 그 운영메뉴얼 역시 보통 두툼한 책 한권이 나온다.
운영메뉴얼을 만드는 기본적인 목적은, 말 그대로 '운영'할 때 필요한 내용들을 담아놓아, 현장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운영메뉴얼이 책 한권이면, 그 운영메뉴얼을 계속 들고 다니는 것이 가능할까? 스텝들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셋업부터 철수까지 거의 계속 움직이는데 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운영메뉴얼을 스텝들에게 배포하면, 한번 쭉 보고는(그것도 몇 명만)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기 불편하고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다"
꼭 책 한 권 두께가 나오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A4용지 다발역시 갖고 다니기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운영메뉴얼은 기록용 자료?
사실, 이런 불편함은 둘째 치더라도, 운영메뉴얼은 내용적인 면에서 굉장히 아이러니한 면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영메뉴얼은 기획팀에서 작성한다. 운영메뉴얼에 들어가는 셋업관련 내용이나, 연출내용, 홍보물 관련 내용 등 대부분의 내용은 각 담당자에게 정보를 요청해서 작성하게 된다. 이렇게 작성된 운영메뉴얼은 각 팀별 필요 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꼴이 되는데, 여기서 아이러니는, 결국 각 담당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덜 자세한(전달받은) 정보만을 싣게 되어 각 담당자들에게는 운영메뉴얼이 거의 아무런 필요가 없어진다는데 있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운영메뉴얼은 기획팀의 담당자 혼자 보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자기가 보려고 만든 꼴이 되는 것이다.
각 팀의 정보취합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운영메뉴얼은 '운영메뉴얼'이라기 보다는 '기록용 자료' 혹은 'check list'에 불과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홍보물 디자인이 꼭 있어야 하나? 티켓 디자인이 꼭 있어야 하나? 관객 출입구가 꼭 나와 있어야 하나? 화장실 위치가 꼭 있어야 하나?
공연마다 다르겠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공연장에 가서 한번만 둘러보면 바로 나오는 정보들이다. 티켓 디자인 몰라도 보면 티켓인 줄 다 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굳이 '운영메뉴얼'이라는 이름의 백과사전으로 만들어 현장 운영 스텝들에게 줄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볼만한 운영메뉴얼을 만들어보자.
이러한 생각들로 인하여, 이번 우리 공연에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보기 편하고 들고 다니기 편한, 그러면서도 운영에 필요한 내용은 들어있는 운영메뉴얼을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꼭 필요한 정보들은 들어가야 한다.
- 셋업부터 철수까지의 일정, 스텝리스트(대표), 리허설 일정, 식사관리, 주차관리, 그리고 뒷풀이까지. 스텝들이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조망할 수 있고, 궁금해 할만한 내용은 다 들어가야 한다.
2. 한 장에 요약되어야 한다.
- 아주 세세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정보가 한 장에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접어서 갖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편하게 볼 수 있다. 구겨서 갖고 다녀도 무방하다.
3.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깨알같은 글씨로 칸을 나눠서 가득 채워 한 장에 모든 정보를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말 그대로 한 장에 넣었을 뿐, 보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그림 등을 이용하여 한 눈에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러한 고민을 갖고 운영메뉴얼 작성에 들어갔다.
작성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엑셀부터 열고 일정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음으로, 차트형식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생선뼈 모양의, 순차적인 작업들을 쓰기 좋은 모양새의 차트를 활용해 보았다.
만들어놓고 보니, 이건 뭐 시간의 흐름도 보이지 않고 읽기도 힘들다. 좌우로 너무 길기도 하고.. (그래서 만들다 말았다)
그래서 조금 다른 시도를 했다. Keynote를 열고 그림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로 했다. 업무들이 시간 흐름으로 보이면 좋을 것 같아 시간 순으로 그림들을 배치해 보았다. 시간도 시각적으로 보이도록 시계 그림으로 넣었다.
그런데, 이것도 눈에 안들어왔다. 시간의 흐름은 여전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며 그냥 흩으러진 느낌이다. 그리고 담당자나 필요한 내용들을 써 넣을 공간도 없었다.
그 다음 시도한 것이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일단, 시간의 흐름이 눈에 잘 들어왔다. 보충 내용들도 넣을 공간이 있었다. 보충 내용들은 마인드맵 형태를 사용했다.
일단은, 현재까지 시도했던 것들 중 가장 마음에 든다.(실명과 전화번호 등의 내용을 가리니.. 좀 지저분해 보인다 ^^;;)
이번 공연은 규모가 작은 공연이고, 그렇기에 들어갈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네 번만의 시도에서 그래도 이번 공연에는 쓸만한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당연히, 이 모양새가 최선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운영메뉴얼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더 편하고 효율적인 모양새를 지속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누구든 함께 해주면 참 좋을텐데… ^^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물론, 이런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사실은,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스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일 듯 ^^;;), 비 조금 와도 위에 뭐 가리고 공연 하던지, 아니면 그냥 실내로 옮겨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두 번이나 연기하면서까지 비가 오면 취소(혹은 연기)라는 것을 고집해야 하냐고.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영상촬영이다. 모든 연출과 현장 운영은 영상에 맞추어져있다. 따라서, 영상에 맞추어진 연출을 무시하고 비를 막기 위해 천막를 친다던지, 실내로 옮겨서 한다던지 하게되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두 번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상황을 이해해주고 아무 불만 없이(정말 없는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들어온 불만은 없다… 고 믿고 싶다 ㅠ.ㅠ) 일정을 조정해 주시는 모든 스텝과 한철 형님께 감사드린다.
아무튼, 다시한번 연기가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로 시도한 운영메뉴얼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운영메뉴얼이 책 한권?
일반적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올리다보면, 소위 '운영메뉴얼'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보기도 하고 만들어보기도 했다.
지금까지 접해본, 그리고 직접 만들어 보았던 운영메뉴얼들을 볼 때마다 참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하게 작성되는 운영메뉴얼은 공연 한 번에 아예 책 한권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하이서울페스티벌같이 관에서 주도하는 페스티벌들은 의무적으로 운영메뉴얼을 만들도록 요청하고 있으며, 그 운영메뉴얼 역시 보통 두툼한 책 한권이 나온다.
운영메뉴얼을 만드는 기본적인 목적은, 말 그대로 '운영'할 때 필요한 내용들을 담아놓아, 현장에서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운영메뉴얼이 책 한권이면, 그 운영메뉴얼을 계속 들고 다니는 것이 가능할까? 스텝들이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셋업부터 철수까지 거의 계속 움직이는데 말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운영메뉴얼을 스텝들에게 배포하면, 한번 쭉 보고는(그것도 몇 명만)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기 불편하고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다"
꼭 책 한 권 두께가 나오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A4용지 다발역시 갖고 다니기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운영메뉴얼은 기록용 자료?
사실, 이런 불편함은 둘째 치더라도, 운영메뉴얼은 내용적인 면에서 굉장히 아이러니한 면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영메뉴얼은 기획팀에서 작성한다. 운영메뉴얼에 들어가는 셋업관련 내용이나, 연출내용, 홍보물 관련 내용 등 대부분의 내용은 각 담당자에게 정보를 요청해서 작성하게 된다. 이렇게 작성된 운영메뉴얼은 각 팀별 필요 정보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꼴이 되는데, 여기서 아이러니는, 결국 각 담당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덜 자세한(전달받은) 정보만을 싣게 되어 각 담당자들에게는 운영메뉴얼이 거의 아무런 필요가 없어진다는데 있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운영메뉴얼은 기획팀의 담당자 혼자 보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냥 자기가 보려고 만든 꼴이 되는 것이다.
각 팀의 정보취합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운영메뉴얼은 '운영메뉴얼'이라기 보다는 '기록용 자료' 혹은 'check list'에 불과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홍보물 디자인이 꼭 있어야 하나? 티켓 디자인이 꼭 있어야 하나? 관객 출입구가 꼭 나와 있어야 하나? 화장실 위치가 꼭 있어야 하나?
공연마다 다르겠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대부분 공연장에 가서 한번만 둘러보면 바로 나오는 정보들이다. 티켓 디자인 몰라도 보면 티켓인 줄 다 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굳이 '운영메뉴얼'이라는 이름의 백과사전으로 만들어 현장 운영 스텝들에게 줄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볼만한 운영메뉴얼을 만들어보자.
이러한 생각들로 인하여, 이번 우리 공연에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보기 편하고 들고 다니기 편한, 그러면서도 운영에 필요한 내용은 들어있는 운영메뉴얼을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꼭 필요한 정보들은 들어가야 한다.
- 셋업부터 철수까지의 일정, 스텝리스트(대표), 리허설 일정, 식사관리, 주차관리, 그리고 뒷풀이까지. 스텝들이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조망할 수 있고, 궁금해 할만한 내용은 다 들어가야 한다.
2. 한 장에 요약되어야 한다.
- 아주 세세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정보가 한 장에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접어서 갖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편하게 볼 수 있다. 구겨서 갖고 다녀도 무방하다.
3.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깨알같은 글씨로 칸을 나눠서 가득 채워 한 장에 모든 정보를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말 그대로 한 장에 넣었을 뿐, 보기가 너무 힘들어진다. 그림 등을 이용하여 한 눈에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러한 고민을 갖고 운영메뉴얼 작성에 들어갔다.
작성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엑셀부터 열고 일정을 그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음으로, 차트형식으로 그려보기 시작했다. 생선뼈 모양의, 순차적인 작업들을 쓰기 좋은 모양새의 차트를 활용해 보았다.
만들어놓고 보니, 이건 뭐 시간의 흐름도 보이지 않고 읽기도 힘들다. 좌우로 너무 길기도 하고.. (그래서 만들다 말았다)
그래서 조금 다른 시도를 했다. Keynote를 열고 그림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로 했다. 업무들이 시간 흐름으로 보이면 좋을 것 같아 시간 순으로 그림들을 배치해 보았다. 시간도 시각적으로 보이도록 시계 그림으로 넣었다.
그런데, 이것도 눈에 안들어왔다. 시간의 흐름은 여전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며 그냥 흩으러진 느낌이다. 그리고 담당자나 필요한 내용들을 써 넣을 공간도 없었다.
그 다음 시도한 것이 다음과 같은 모양이다. 일단, 시간의 흐름이 눈에 잘 들어왔다. 보충 내용들도 넣을 공간이 있었다. 보충 내용들은 마인드맵 형태를 사용했다.
일단은, 현재까지 시도했던 것들 중 가장 마음에 든다.(실명과 전화번호 등의 내용을 가리니.. 좀 지저분해 보인다 ^^;;)
이번 공연은 규모가 작은 공연이고, 그렇기에 들어갈 내용이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네 번만의 시도에서 그래도 이번 공연에는 쓸만한 모양새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당연히, 이 모양새가 최선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운영메뉴얼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더 편하고 효율적인 모양새를 지속적으로 고민할 것이다. 누구든 함께 해주면 참 좋을텐데… ^^
2011년 6월 7일 화요일
공연후기#3 : 페스티벌 BO:M 중에서 < 웃는소를 기다리며 > By 한스페터 리쳐

지난 3월22일 부터 4월 17일 까지 서울 각지에서 열렸던 페스티벌 봄에서 한스페터 리쳐의 <웃는 소를 기다리며>를 보고왔다.
종로구 원서동의 어느 작은 가정집에서 펼쳐진 매우 흥미로웠던 이 공연에 대해 포스팅해볼까 한다.
우선 딱딱하게나마 공연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을 잠시 들먹이고자 한다. 그의 저서 <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른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 만의 어떤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행동은 마치 배우라는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것 처럼 연극적이라고 했으며,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공간을 마치 커다란 공연무대처럼 사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관점은 '공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다. 결국 공연이라는 것은 <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진 '특수한 사건'의 관찰 > 이 결코 아니며 우리생활과 아주 밀접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커피숍에 앉아서 어떠한 무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잠깐 씩 들려오는 이야기 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그럴 때 나는 나름대로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의 공간을 가상의 프레임으로 가두고, 어디선가 지켜보는 하나의 관객이 되어본다- 이것이 아주 재밌는 연극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관찰되어지는 하나의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연무대에 존재하는 배우임과 동시에 관객인 것이다.
내가 만드는 공연
그렇다면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 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최근 INTERACTIVE의 시대를 맞이하여, 문화계 전반에서 '소통과 상생'이 라는 문구를 자주 접하게 되지만, 과연 내가 그들과 INTER-ACTIVING 하고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어졌다고 해서 혹은 배우가 나를 무대로 이끌어내어 무언가를 행동케 했다고 해서 그들과의 소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경계를 허물기' 와 단순한 '관객 참여'에는 내적소통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관객인 동시에 배우가 되는 환경'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면 매력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야말로 관객 스스로가 지금 일어나는 사건의 발단, 과정 그리고 결론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한스 페터 리쳐의 <웃는 소를 기다리며>가 이런 지적에 대한 매우 유쾌한 고민이었다. 우리 모두가 배우 였으며 우리가 그 시간에 벌어진 어떠한 사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서동의 어느 가정집에 도착했을 때, 한스페터리쳐는 문앞에서 우리를 맞이하였다. 그는 마치 초대된 손님들을 다루듯, 우리에게 자신은 이 집에 살고 있는 박잉란(PARK ING LOT)이라는 어느 한국인 여성에 대해 연구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그녀가 북한의 스파이 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으며 그 집에서 발견한 여러가지 증거들과 정황들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집안에 들어선 그는 그가 발견한 몇가지 사실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그 증거자료들를 보여주었다.
박잉란씨는 어쩌구 저쩌구..중략 듣다보니 도대체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우리에게 하고 있다. 이건 무슨말인지 도통 알수가 없네 이 친구…하고 있을 그 때, 갑자기 아주 재미난 사건이 벌어졌다. 관객한명이 그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어쩌구 저쩌구 하셨는데 그럼 여기 걸린 이건 뭐죠?' 이 때 부터 그의 이야기는 아주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하며 더더욱 알수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온통 의문점 투성이인 그의 장난스런 설명에 이제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관객들이 다양하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설명하지 않는 그는 그럼에도 거침없이 내뱉기 시작한다. 화려한 언변으로 그 대답을 잘 피해나가면서-
처음부터 눈치빠른 관객은 알았겠지만 그 집에 살았던 스파이였다고 그가 주장하는 박잉란 씨는 영어 철자가 PARK ING LOT, 즉 Parking Lot 이다. 또한 사건에서 중요한 개념이 되는 어떤 책에 대해 한참 설명한 뒤 그 책의 제목은 bullshit (개소리)라고 말해버린다.

(그의 집에서 발견되었다 주장하는 손수건, 세계에 단 3장이 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함)
INTERACTIVE : 포럼 연극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 하고자 했을까?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그를 만나서 그의 bullshit을 들으면서 질문을 던지고 함께 '그날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동안 우리의 대화와 정황은 어떠한 결론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는 허구와 진실을 오락가락 하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하나의 맥락을 만들었다가 또 사라졌다. 오히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거세된 맥락속의 사건'은 분명 그와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무대 라는 환상을 깨기 위해 과감히 원근법을 포기했지만 무대형태로는 여전히 프로시니엄을 고수했다. 그래서 '소외효과(Verfremdungseffekt)'를 통해 관객이 공연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게 했더라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공간 구성에서 무대/객석의 분리는 여전히 존재하였다. 그에 따라 능동적이고 활발한 관객 참여, 즉 INTERACTIVE는 한계점을 보였었다. 그러나 한스페터 리쳐의 공연을 살펴보면, 공연의 공간은 완전하게 투명해졌다. 무대적 환상과 관객/무대의 경계를 나누던 제4의 벽은 무너졌으며, 그 날 그 날의 관객에 따라 새로운 맥락을 통한 그 날 만의 사건이 발생했음을 예측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그 날의 공연을 길게 만들 수도, 엉망이 되게 할 수도 있었으며, 어마어마한 반론을 제기하며 그를 당황시킬 수도 있었던 위대한 존재였다.
포럼연극의 창시자인 아우그스토 보알이 말하길 '모든 인간 사회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내놓으며, 의식하진 못하지만 인간관계는 늘 연극적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공간의 사용이나 몸짓 언어, 단어 선택, 억양, 사상과 감정대립등이 모두 하나의 연극이라는 것, 그것은 단지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할 때가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하며,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어딘가를 걸어갈 때도 모두 적용된다고 하였다.
한스페터 리쳐는 우리의 인간의 일상적 COMMUNICATION이 매우 연극적인 것들임을 알고, 연극이 일부러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고도 우리가 대화하고 공감하는 것을 공연으로 조명하여, 억지로 무대가 관객과 소통하려는 장치 없이도 우리를 자연스레 함께 공연을 이끌어내야만 하는 동반자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 소통의 조타수로써 이런 발칙한 실험을 매우 유쾌하게 전달하고 있다.
By doroomuk
2011년 5월 30일 월요일
공연에 닿아있는 영화 / 영화에 닿아있는 공연 #2

지난 블로깅을 통해 ( http://blog.cuintheb.com/2011/02/blog-post_23.html ) IN THE B의 첫번째 프로젝트 -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 / IT'S NOT A CINEMA # (제목은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변경) 에 대한 개념적인 설명을 했다.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보여질 것인지에 대해 적어보려한다.

우선 5월21일 계획했던 < IT'S NOT A CINEMA #1 이한철 on RUF >는 갑작스레 비가 내려 6월 중으로 연기 되었다.(그 날 비를 맞으며 함께한 30여명의 스텝들께 모두 감사!)
그에 따라 < IT'S NOT A CINEMA #2 > 와 IN THE B의 두번째 프로젝트 < THE HOUSE IS NOT A HOME > 을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바쁜 상황에 놓여 있다ㅜㅠ
아무튼 먼저, 공연에 닿아있는 영화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공연 안에 영화적 매체의 특수성이 잘 살아 있는 것을 말한다. 예를들어,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 공간안에서 배우 2명이 서로에게 전화를 건다고 가정해보자-
조명으로 TOP LIGHT를 각자 받은 배우들은 서로 객석을 바라보고 통화를 한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를 볼 수 없다는 공간의 전제를 바탕으로.
관객들은 이 때, 둘 간에 보이지않는 벽이 있으며 실제로 그 벽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서로 약속된 공간 상황을 이해한다. 이러한 설정은 바로 영화적인 특수성이다. 영화에서 화면편집을 통해 쉽게 만들어내는 상황을 관객들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의 특수성과 영화적 특수성이 잘 살아서 하나의 이미지로 귀결 되는 것이 바로 상호매체성이다. 상호매체성이 제대로 활용될 때, 공연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블로그#1의 ROBERT LEPAGE 참조 http://blog.cuintheb.com/2011/02/blog-post_23.html )
여기서 우리는 정확히 반대의 시도를 하려한다. 바로 '영화에 닿아있는 공연'이다.
분명 영화안에 공연의 특수성이 잘 살아있을 때, 그 영화는 영화가 아닌 무언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몇가지 의문점이 들것이다. 공연의 특수성이 살아있는 영화라면
1. 뮤지컬 영화 ex 시카고
2. 음악영화 ex 원스
3. 뮤직비디오
4. 공연실황
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을 담는다는 것이 공연의 특수성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않는다.
왜냐하면 실제 '공연무대의 공연'이 아닌 영화안에서 '배우들의 대사 그리고 행동' 또한 공연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의 acting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모든 영화가 공연적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어떤것을 담고 그것을 편집한다는 것은 영화적인 특수성이므로
위의 4가지 예들은 결국 영화 혹은 영상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공연만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영화에 닿아 있는 공연을 위한 조건
모든 공연을 영상으로 담는다는 것은 결국 영화(영상)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약간의 비약적인 가정을 거쳐야한다.
가정1. 사람들은 공연이 담겨진 영화를 볼 때, 공연을 본다고 생각한다. 이 때 영화는 공연의 현장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가정 2.현장감은 공연의 특수성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적인 특수성이다. 공연만이 가지는 것은 바로 현장성이다. 이러한 현장성을 얻기 위해 결국 영화(영상)일 수 밖에 없는 결과물을 위해 정작 공연을 해야하는 것은 바로 카메라이다.
가정 3.사람들이 공연을 보고있다는 느낌을 놓게 하지 않으면서,(영화라는 사실을 알고도 공연으로 인식하는 선까지) 영화만 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현장성을 전달한다.(여기서 현장성은 촬영된 공연을 볼 때의 단순한 현장감과는 다르다.)
카메라가 공연을 하기 위한 조건들
1. 관객은 관객이다.- 실제 음악공연의 실황을 담아야한다.(드라마를 위한 사전촬영 x)
2. 카메라는 실제 공연과 동일한 시간을 담아야 한다.
3. 카메라는 전체그림을 담는 것에 부담없이 영화적인 것(영화만 할수 있는 것, 또한 영화에서도 잘 하지않지만, 카메라와 음향은 분명히 할수 있는 것)을 적극 활용한다.
4. 공연영상을 보는 관람자가 끊임없이 '공연실황' 즉 내가 그곳에 있지않았더라도 그곳에 있었다면 같은 자극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어야 한다.
5. 현장의 관객들은 '영화촬영하는 것을 현장에서 감상'(이것또한 공연이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 카메라, 스텝 등 모든 것이 결과물에 노출되는 것에 자유롭게, 그러나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7. 카메라는 몽타쥬를 결정할때 많은 부분에서 원테이크를 활용한다. 이것은 공연상에서의 약속에 대한 영상관람자의 순응적 이해를 위한 것이다.(현장성 극대화)
8. 카메라는 현장을 그대로 담아 내는데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없던 narrative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카메라와 음향의 트릭이다. 편집상의 왜곡 또한 가능하다.
9. 모든 왜곡 요소는 사실적(다시말해 공연현장을 담거나, 현장에서 담았을 것으로 예측 되어야한다.)이어야 한다.
10. 카메라만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카메라가 하지않았던 것을 공략해야한다.(머리를 날려도 좋다, 땅을 찍어도 좋다.) 카메라는 현장 관객의 눈이요, 현장 관객은 모든 것을 볼 권리가 있다.
위의 조건들을 거치고 나면
1. 뮤지컬 영화 ex 시카고
2. 음악영화 ex 원스
3. 뮤직비디오
4. 공연실황
들과는 다른 양상의 결과물을 접하게 된다. 또한 머리가 복잡해진다. @.@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의 시작은 또한 이러하다.
공연이 아무리 잘 되어도 티켓수익이 전체 매출인 것이 공연의 안타까운 성질이다.
그러나 이 IT'S NOT A CINEMA 프로젝트는 영화 혹은 영상의 파급성을 통해 극장성이 가지는 비탄력적인 부분을 채워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험이다.
이 파급력을 가진 영상을 보는 영상관객이 그 안에 공연의 특수성이 잘 살아있음을 느끼고 마치 공연을 본 것으로 느끼게 되어 #2, #3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게 되면 결국 공연의 가치가 높아지게 되고 그 가치의 상승은 결국 어떠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IN THE B의 생각이다.( 참고 : 유목화된 사회에서의 B의 역할 http://blog.cuintheb.com/2011/01/b-no1-b.html )
이를 위해 관객은 25명-무료초대, 그러나 정작 음향,조명,카메라 팀을 포함한 스텝은 30명인 다소 재밌는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다. 미래는 알수가 없다. 그저 무언가 일어나길 희망하고 있다.

By doroomuk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The 10th Maison IN THE B 후기
초대손님 : 김아영(CJ E&M), 임지민(프리랜서 연출가)
공연업계 동료이자 동기 및 후배인 김아영양과 임지민양의 방문.
CJ E&M의 현재 상황과 공연업계 전반의 상황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었다.
이 날 초대 손님들에게 가장 미안했던 것은,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메종이 있는 날 밤 12시에 미팅 약속이 잡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아영양과 지민양은 새벽 5시 30분까지 우리 회의에 동참하는 어쩔 수 없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우리보고 도대체 어떤 것을 하냐고 물어보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꽤 됐을 듯.
아영, 지민. 미안해~~ ^^;;;
2011년 4월 21일 목요일
놀이동산과 공연 페스티벌의 경쟁 관계에 대하여
오늘은 작년 여름에 여자친구와 함께 캐리비안베이에 갔을 때 느꼈던 점을 적어볼까 한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함께 캐리비안베이에 갔다. 중간에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쳐서 놀이기구 운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역시 여자친구와 함께 간 캐리비안베이는 즐겁기만 했다. ㅎㅎㅎ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보려고 돌아다니다가 '타워 부메랑고'라는 탈 것을 발견하고 줄을 섰다. 거의 1시간 넘게 기다리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로 유명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고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놀이동산에서만은 1시간이 넘게 기다리면서도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비싼돈까지 내고 들어왔는데 말이다.
거기서 나의 생각은 직업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공연과 놀이동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여기서 좀 비약이 심하긴 하다. 하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느낄 것이다. 생각의 비약이 꼭 논리적으로 설명 되어야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공연은 조금만 딜레이 되어도 여기저기서 관객들의 불만이 터져나온다. 공연장에서 1시간 딜레이라는 것은 이미 그 순간 온라인 상에 관객들의 불만으로 도배가 되어 있을 터이다.
공연은 사람들이 일정한 입장료를 내고 공연 현장에 들어가서 아티스트들의 실연을 즐기는 문화 콘텐츠다.
놀이동산은 사람들이 일정한 입장료를 내고 동산(?)에 들어가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즐기는 레져시설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공연과 놀이동산을 비교하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공연은 해당 공연 단 하나의 콘텐츠만 있는 반면 놀이동산에는 놀이동산 내에 수 많은 탈거리(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급은 공연이라기 보다는 공연 페스티벌로 정해야 할 듯 하다. 페스티벌과 놀이동산.
일단, 사람들이 일정한 입장료를 지불하고 현장에 들어간다는 개념에 있어서는 페스티벌과 놀이동산(카테고리가 딱 맞진 않지만 편의상 그냥 페스티벌과 놀이동산으로 통일하겠다)이 동일하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바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간에 대한 선택권이다. 페스티벌은 각각의 콘텐츠(공연)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최측에 의해 정해져있다. 하지만 놀이동산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콘텐츠(탈거리)를 즐길 수 있다.
대기 시간에 대한 고객 불만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공연은 약속된 시간이 있고 관객은 그 시간에 콘텐츠를 즐길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불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에비해 놀이동산은, 본인의 선택에 의하여 콘텐츠를 즐길 시간이 정해지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기시간 역시 본인이 선택한 것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페스티벌도 관객들에게 일정 선택권이 주어진다. 본인이 원하는 공연을 골라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선택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놀이동산과 페스티벌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실제로, 한번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의 총 체류 시간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놀이동산과 페스티벌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페스티벌이 놀이동산만큼 관객들의 편의나 불만 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페스티벌의 관객이라면, 그들이 놀이동산에 가서 지불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희생하고, 그들이 놀이동산에 갈 수 있는 기회시간('기회비용'에 빗대어…)을 희생하고, 그들이 놀이동산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즐거움(역시 '기회비용'에 빗대어…)을 희생하면서까지 페스티벌을 즐기고자 오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공연 및 페스티벌 기획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기회비용, 기회시간, 기회즐거움들이 아깝지 않게 해줄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우리의 보람이고 우리의 즐거움이지 않을까?
ps. 글을 읽다보면 상당부분 갑작스런 생각의 비약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여러 논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 더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놔둔다. 어차피 이 글이 무슨 논문도 아니고,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우리는 우리의 말이 옳다고 우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니까.
작년 여름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함께 캐리비안베이에 갔다. 중간에 비가 오고 천둥번개가 쳐서 놀이기구 운영이 잠시 중단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역시 여자친구와 함께 간 캐리비안베이는 즐겁기만 했다. ㅎㅎㅎ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보려고 돌아다니다가 '타워 부메랑고'라는 탈 것을 발견하고 줄을 섰다. 거의 1시간 넘게 기다리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이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로 유명하다. 그만큼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고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놀이동산에서만은 1시간이 넘게 기다리면서도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비싼돈까지 내고 들어왔는데 말이다.
거기서 나의 생각은 직업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공연과 놀이동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여기서 좀 비약이 심하긴 하다. 하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느낄 것이다. 생각의 비약이 꼭 논리적으로 설명 되어야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공연은 조금만 딜레이 되어도 여기저기서 관객들의 불만이 터져나온다. 공연장에서 1시간 딜레이라는 것은 이미 그 순간 온라인 상에 관객들의 불만으로 도배가 되어 있을 터이다.
공연은 사람들이 일정한 입장료를 내고 공연 현장에 들어가서 아티스트들의 실연을 즐기는 문화 콘텐츠다.
놀이동산은 사람들이 일정한 입장료를 내고 동산(?)에 들어가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골라서 즐기는 레져시설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공연과 놀이동산을 비교하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일반적인 공연은 해당 공연 단 하나의 콘텐츠만 있는 반면 놀이동산에는 놀이동산 내에 수 많은 탈거리(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교급은 공연이라기 보다는 공연 페스티벌로 정해야 할 듯 하다. 페스티벌과 놀이동산.
일단, 사람들이 일정한 입장료를 지불하고 현장에 들어간다는 개념에 있어서는 페스티벌과 놀이동산(카테고리가 딱 맞진 않지만 편의상 그냥 페스티벌과 놀이동산으로 통일하겠다)이 동일하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바로 콘텐츠를 즐기는 시간에 대한 선택권이다. 페스티벌은 각각의 콘텐츠(공연)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주최측에 의해 정해져있다. 하지만 놀이동산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콘텐츠(탈거리)를 즐길 수 있다.
대기 시간에 대한 고객 불만의 차이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공연은 약속된 시간이 있고 관객은 그 시간에 콘텐츠를 즐길 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불만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에비해 놀이동산은, 본인의 선택에 의하여 콘텐츠를 즐길 시간이 정해지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기시간 역시 본인이 선택한 것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페스티벌도 관객들에게 일정 선택권이 주어진다. 본인이 원하는 공연을 골라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선택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놀이동산과 페스티벌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실제로, 한번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의 총 체류 시간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놀이동산과 페스티벌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페스티벌이 놀이동산만큼 관객들의 편의나 불만 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페스티벌의 관객이라면, 그들이 놀이동산에 가서 지불할 수 있는 기회비용을 희생하고, 그들이 놀이동산에 갈 수 있는 기회시간('기회비용'에 빗대어…)을 희생하고, 그들이 놀이동산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즐거움(역시 '기회비용'에 빗대어…)을 희생하면서까지 페스티벌을 즐기고자 오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 공연 및 페스티벌 기획자들은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기회비용, 기회시간, 기회즐거움들이 아깝지 않게 해줄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우리의 보람이고 우리의 즐거움이지 않을까?
ps. 글을 읽다보면 상당부분 갑작스런 생각의 비약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여러 논의를 이끌어 내는 데에 더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놔둔다. 어차피 이 글이 무슨 논문도 아니고,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우리는 우리의 말이 옳다고 우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이니까.
2011년 3월 31일 목요일
The 9th Maison in the B 후기
2011년 3월 29일 화요일
공연후기#2 : 하이너 괴벨스 <나는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지난 토요일 LG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하이너 괴벨스의 공연 <나는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지 않았다.>를 보고 왔다.
실제로 괴벨스의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공연은 총 3개의 막으로 T.S.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1917)", 모리스 블랑쇼의 "낮의 광기(La folie du Jour,1949)",사무엘 베케트의 "(Worstward Ho,1982)"의 텍스트에 음악을 붙여서 만든 음악극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연이 시작하고 첫번째 막인 T.S엘리엇의 시가 끝났을 때, 나는 매우 당혹 스러웠다. 시의 내용은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만큼 난해했으며, 솔직히 지루하기까지 했다.
음악은 하나 혹은 두개의 음계로만 구성된 단조롭고 괴상한 하모니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더욱 집중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으려 애썼다. 그러나 텍스트에 집중할수록 더욱 알수없는 미궁에 빠져드는 것이다. 역시 난 이해 할수없는 예술의 세계인 것인가하고 생각이 들때 쯤, 베케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두번째막이 시작되었다. 실패에 관한 그의 반복적인 글들이 스크린을 통해 전해졌을 때, 갑자기 읽어서는 결코 이해가 불가능한, 단지 리듬감과 실험적인 반복효과를 통해 텍스트의 음악성을 살리려했던 그의 소설들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왜 공연이 반드시 텍스트의 내용을 재현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실제로 20세기에 들어선 공연은 그야말로 '텍스트의 위기'를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권위파괴, 진리의 부정, 해체, 경계넘기 등이 포스트모던이라는 근사한 듯 한 주제를 통해서 줄거리를 구성하는 텍스트들이 주도권을 상실하고, 언어 외적인 표현요소를 이용한 다양한 실험('포스트 드라마' 라고들 한다)이 진행되고 있는게 사실이다.(물론 IN THE B 생각하는 '공연'의 개념에서 이런 현상들은 공연이 본래 문학의 영역에 속하는 희곡의 지배에서 벗어나 공연의 본래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순간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들 속에서 괴벨스는 이러한 위기를 확실히 극복하기 위해 앞서 언급된 '포스트 드라마적인 시도'가 아닌 텍스트가 가진 음악성을 공연에서 이용하고자 한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가 갖는 개인적 발화형태를 빠롤(parole) 그리고 사회적 약속을 랑그(langue)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언어의 사회적 관습과 약속, 즉 랑그가 없는 빠롤 만으로는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며, 결국 개인의 무한한 발화체계는 랑그라는 언어규칙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무한한 상상력의 빠롤은 결국 랑그에 의해 결합될 뿐, 새롭게 창조되지는 못한다고 했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수 많은 음악체계(음악성을 가진 체계)가 랑그체계인 음계체계에 의해 결정되다고 볼 수 있다.(빗소리와 새소리도 좋은 음악체계, 음악성을 가졌음에도 음계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보라-) 그러나 괴벨스는 음계체계의 한계극복을 오히려 텍스트에서 찾았던 것 같다. 마치 슈톡하우젠 (Karlheinz Stockhausen)이 음계체계의 극복을 위해 1954년 전자기기를 이용해 특별한 주파수와 볼륨조절로 음악을 만들었던 것 처럼-(전자음악의 시작이라고 볼수 있다.)
그는 텍스트를 명쾌하게 읽어내려갈 때 느껴지는 음율감, 부드러움, 리듬감이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연 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고 난 후, 다시 공연에 집중하게 되니, 한결 대사가 편하게 들리게 되었다. 텍스트의 내용,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텍스트가 가진 음악성에 귀를 기울이게 되니 묘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이다. 그 텍스트의 높낮이를 따라가고, 반복적인 리듬을 느끼게되면서-
갑자기 공연 전, 김선옥 하우스매니져의 낭랑한? 목소리로 분명 ' 3번째 막은 연출가의 의도에 의해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고 공지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이다. 괴벨스는 우리가 텍스트가 가진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길 바랬던 것이다!!
'텍스트의 위기'에 닿아있는 공연을 '탈텍스트 혹은 포스트드라마'적인 시도가 아닌 오히려 텍스트의 색다른 미학을 공연에 이용하는 것은 얼마나 창조적인가!
물론 이러한 시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아직은 어렵고 난해하지만, 그것 자체가 커다란 의미다. 예술의 현재성은 내일 존재하기 때문이다. 슈톡하우젠의 미친 시도(나는 감히 B적인 발상이라고 말하고 싶다.)가 없었다면, 지금의 Justice와 Tiesto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진 모르겠다. 다만, 괴벨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음악과 공연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대신,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괴벨스의 공연은 31일, 4월1일에 통영국제음악축제에서 계속해서 만날수 있다.
후기 끝
By Doroomuk
2011년 3월 17일 목요일
St.raw.very #1 : 초콜렛
St.raw.very는 'In the B'의 2주단위 연구 프로젝트이다.
2주동안에 하나의 키워드를 정한 후, 그것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것(어떠한 형식도, 제약도 없는)이다. 첫번째 주제는 초콜렛이다.
성지환
우리가 새로 시작한, 2주 단위 연구 프로젝트.
그냥 아무 주제나 정해서 거기서 파생시킬 수 있는 생각들을 해보자는 새로운 유희.
쵸콜렛의 주 원료인 카카오. Cacao라는 말은 멕시코 중앙에서 시작된 말 'chocolatl'에 어원을 둔 "쓴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것이란다. 그렇다. 쵸콜렛은 원래 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쵸콜렛' 하면 달다고 생각한다.
그럼, 쵸콜렛은 달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쓰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쵸콜렛에 대하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료는 쓰다. 하지만 그 가공물은 달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대구가 아닌가.
'인내는 쓰다. 하지만 그 열매는 달다.'
그래서 쵸콜렛의 성질들을 사업과 연관지어 보았다.
쵸콜렛을 한 개 먹으면 달다. 하지만 많이 먹으면 속이 안좋아지고, 심하면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다.
--> 쓴 인내를 이기고 성공을 이루면 그 열매는 굉장히 달다. 하지만, 그 성공에 취해 계속 그 열매에 매달리면 망할 수 있다.
쵸콜렛이 좋다고 당장 먹지도 못하면서 손에 쥐고 있으면 녹아버린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먹지 못하게 된다.
--> 아이디어를 남 주기 아깝다고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으면, 결국 그 아이디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린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그냥 공개해 버리는 것이 좋다.
쵸콜렛을 녹여서 핫쵸코를 만들어 마시면 맛있다. 하지만 쵸콜렛을 녹여서 벽에 바르면 엄마한테 혼난다.
--> 어떤 사물의 용도를 변경하여 신제품을 개발하려 할 때에는 그 효용과 소비자의 선호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쵸콜렛이라도 보관을 잘못하면 녹아서 먹지 못한다.
-->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써먹지 못한다.
이 외에도 많이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쵸콜렛에 대한 생각이냐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이건 단지 우리의 유희일 뿐이니.
-----------------------------------------------------------------------------
임효주
90년대 초반에는 흔히 수퍼에서 살수있는 초컬릿에는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가나와 투유 사이에서 고민했고 장미꽃이 그려져있던 블랙로즈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미니쉘은 맛을 못본지가 오래된거 같다. 그대신 카카오 함유량을 강조한 팩키지가 이제는 더 눈에 띈다.
'Sex and The City'에서 Samantha는 남자친구를 침대위에서 기다리면서 초콜렛 한 박스를 부둥켜 안고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이건 리비도(Libido)를 돕고 혈관을 이완시켜주기 때문인데 아연이 풍부한 식품중의 하나로 초컬릿의 주 성분인 카카오는 심장에 좋은 식품으로 여겨 지기도 한다. 최근 광고에 많이 쓰이는 문구인 항산화 식품의 하나인 코코아 빈은 원래부터 달착지근하지 않다. 설탕과 카카오 우유 등의 함유량의 변화로 세상에서 가장 여러가지로 존재하는 식품이고 그 어떤 형태를 띄어도 독특한 향과 달콤함을 잊기 어렵다.
초컬릿의 시초였던 약 2천년전에는 물물교환에 쓰이는 귀한 물품이기도 했고, 전시에서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효도 식품으로, 유명한 영화 '찰리와초콜릿공장','초콜릿' 등의 소재로 쓰여 많은 사람을 즐겁게 했다. 그중에서도 '초콜릿'은 극적인 변화를 초콜릿을 통해 얻게 된다는 감동적인 촉매제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입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제외한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초컬릿 향이다.
뉴욕에서는 초컬릿 페스티벌이 매년 열려 도시 전체를 흥분하게
한다. 관광객과 시민들 그리고 초컬릿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과 초컬리티에들이 모두 모여 그 모든것을 즐기는 모두를 위한 축제이다. 이 축제는 초컬릿을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길수 있는 기회와 다양한경험을 준다.
가끔 나는 흔히 길에서 나눠주는 홍보용 휴지가, 그리고 주유소에서 나눠주는 휴지 혹은 음료수가 차라리 초컬릿 한조각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는 날에는 욕조안에 다크 초컬릿을 가득 받아 놓고 개 헤엄을 쳐도 좋겠다. 헛짚었을때엔 화약약품 나는 물 대신에 초컬릿이 입에 가득하게... 중독성이 가장 크다는 담배 보다도 나는 초컬릿이 더 끊기 힘든 기호식품이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슈퍼에 달려가 다크 초컬릿이 덮여있는 아몬드를 레드 와인과 함께 마시고 싶은 심정은 아마도 이 글의 끝을 어떻게 맺을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진정시켜줄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지. 내게 초컬릿' 이라는 소재를 던저준 그 순간부터 다른 용도 혹은 글의 주제를 도무지 찾아낼수 없는것은 아마도 너무 강한 이 초컬릿의 똑부러진 성질때문인것 같다. 아 맛있겠다 라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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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환
초콜렛 흔히 초콜렛은 담배, 커피, 술 과 함께 4대 합법적 마약에 속한다(개중에 난 녹차요, 치즈케익이요 한다면 할말없음)고 들 말한다 이중에서 술은 간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있고, 담배는 특히 미국 내에서 상징적으로 '마약'처럼 취급하는정도의 분위기.(물론동의하지않은 나같은 애연가들도 어쩔수없게 담배를 케이스에서 뽑아낼때마다 해골마크나 '담배를안피게하는것에전혀도움안되는' 기분 나쁜 그림을 보아야하는것이 사실임) 커피는 고혈압과 위장질환, 불면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최근 커피의 효능에 대해 많은 기획연구가 이루어지며 혹 커피가 동맥경화와 암을 억제한다고 발표되고 있으나, 때는 늦은 것같다. 모든 사회적 통제가 그러하듯, 그 이유의 이면에는 늘 정치적 이권다툼이 있기마련이다. 예를 들어 담배농장이 많은 제 3세계 국가의 성장을 매우 윤리적인 이유로 막거나 커피 대신 세계적으로 차의 생산량을 늘리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앞마당에 차잎을 심고 후식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독점기획하려는 '집권자'의 횡포라고 감히 상상해볼수도 있다. 실제로 높은 질병 사망율을 가진 뇌졸증, 중풍, 동맥경화 및 비만질환등에 대해서, 우리의 혈관을 조여오는 치즈나 삼겹살 등을 통제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초콜렛은 어떠한가?
그들은 매우 잘해오고 있다. 그들은 아주 적당히 통제와 호용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담배와 커피보다는 더 식품같은, 고구마와 땅콩보다는 더 상품같은, 이미지를 교묘하게 구축해왔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날은 없고, 담배를 피는 날도 없다. 그러나 초콜렛을 사야하는 날은 있다. 하지만 당근즙을 섭취해야하는 날은 없고, 청량고추를 심어야하는 날은 더더욱 없다.
초콜렛은 우리에게 마약처럼 '끊지못하는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원'부터 '특별한 사람을 위한 품격있는 명품'의 포지션까지 매우 다양하게 접근해왔다.
그렇다-나는 여기서 초콜렛과 전쟁을 선포한다. 초콜렛은 좋지만, 초콜렛이 지금까지 보여왔던 행보는 너무나 얄밉고 교묘한 구석이 있기 떄문이다.
이제 여기서 나는 '해바라기씨 선언'을 통해 해바라기씨의 전면적인 유통과 브랜딩의 개진을 선포하는 바다.
이를 위해 해바라기씨 차를 시작으로 해바라기씨 캐릭터 인형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촉구할 것이다.
이제는 변해야한다. 해바라기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B다.(물론 아닐수도 있다.) 초콜렛에게 선전포고한다. 언제까지 A가 될수 있을지 잘 고민해라-
결국 세상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늘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그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지여다.
아니면 우리와 함께 해바라기씨에 초코를 바르는 대신에, 우리안으로 들어온다면(해바라기씨안에 초코가 들어있는 형태) 기꺼이 받아주겠노라- 끝-
2주동안에 하나의 키워드를 정한 후, 그것에 관한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것(어떠한 형식도, 제약도 없는)이다. 첫번째 주제는 초콜렛이다.
성지환
우리가 새로 시작한, 2주 단위 연구 프로젝트.
그냥 아무 주제나 정해서 거기서 파생시킬 수 있는 생각들을 해보자는 새로운 유희.
쵸콜렛의 주 원료인 카카오. Cacao라는 말은 멕시코 중앙에서 시작된 말 'chocolatl'에 어원을 둔 "쓴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한 것이란다. 그렇다. 쵸콜렛은 원래 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쵸콜렛' 하면 달다고 생각한다.
그럼, 쵸콜렛은 달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쓰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쵸콜렛에 대하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료는 쓰다. 하지만 그 가공물은 달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대구가 아닌가.
'인내는 쓰다. 하지만 그 열매는 달다.'
그래서 쵸콜렛의 성질들을 사업과 연관지어 보았다.
쵸콜렛을 한 개 먹으면 달다. 하지만 많이 먹으면 속이 안좋아지고, 심하면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다.
--> 쓴 인내를 이기고 성공을 이루면 그 열매는 굉장히 달다. 하지만, 그 성공에 취해 계속 그 열매에 매달리면 망할 수 있다.
쵸콜렛이 좋다고 당장 먹지도 못하면서 손에 쥐고 있으면 녹아버린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먹지 못하게 된다.
--> 아이디어를 남 주기 아깝다고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으면, 결국 그 아이디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린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그냥 공개해 버리는 것이 좋다.
쵸콜렛을 녹여서 핫쵸코를 만들어 마시면 맛있다. 하지만 쵸콜렛을 녹여서 벽에 바르면 엄마한테 혼난다.
--> 어떤 사물의 용도를 변경하여 신제품을 개발하려 할 때에는 그 효용과 소비자의 선호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쵸콜렛이라도 보관을 잘못하면 녹아서 먹지 못한다.
--> 아무리 좋은 정보라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써먹지 못한다.
이 외에도 많이 생각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쵸콜렛에 대한 생각이냐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기를. 이건 단지 우리의 유희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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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주
90년대 초반에는 흔히 수퍼에서 살수있는 초컬릿에는 종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가나와 투유 사이에서 고민했고 장미꽃이 그려져있던 블랙로즈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미니쉘은 맛을 못본지가 오래된거 같다. 그대신 카카오 함유량을 강조한 팩키지가 이제는 더 눈에 띈다.
'Sex and The City'에서 Samantha는 남자친구를 침대위에서 기다리면서 초콜렛 한 박스를 부둥켜 안고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이건 리비도(Libido)를 돕고 혈관을 이완시켜주기 때문인데 아연이 풍부한 식품중의 하나로 초컬릿의 주 성분인 카카오는 심장에 좋은 식품으로 여겨 지기도 한다. 최근 광고에 많이 쓰이는 문구인 항산화 식품의 하나인 코코아 빈은 원래부터 달착지근하지 않다. 설탕과 카카오 우유 등의 함유량의 변화로 세상에서 가장 여러가지로 존재하는 식품이고 그 어떤 형태를 띄어도 독특한 향과 달콤함을 잊기 어렵다.
초컬릿의 시초였던 약 2천년전에는 물물교환에 쓰이는 귀한 물품이기도 했고, 전시에서는 에너지를 보충하는 효도 식품으로, 유명한 영화 '찰리와초콜릿공장','초콜릿' 등의 소재로 쓰여 많은 사람을 즐겁게 했다. 그중에서도 '초콜릿'은 극적인 변화를 초콜릿을 통해 얻게 된다는 감동적인 촉매제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입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제외한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초컬릿 향이다.
뉴욕에서는 초컬릿 페스티벌이 매년 열려 도시 전체를 흥분하게
한다. 관광객과 시민들 그리고 초컬릿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과 초컬리티에들이 모두 모여 그 모든것을 즐기는 모두를 위한 축제이다. 이 축제는 초컬릿을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즐길수 있는 기회와 다양한경험을 준다.
가끔 나는 흔히 길에서 나눠주는 홍보용 휴지가, 그리고 주유소에서 나눠주는 휴지 혹은 음료수가 차라리 초컬릿 한조각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혹은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는 날에는 욕조안에 다크 초컬릿을 가득 받아 놓고 개 헤엄을 쳐도 좋겠다. 헛짚었을때엔 화약약품 나는 물 대신에 초컬릿이 입에 가득하게... 중독성이 가장 크다는 담배 보다도 나는 초컬릿이 더 끊기 힘든 기호식품이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슈퍼에 달려가 다크 초컬릿이 덮여있는 아몬드를 레드 와인과 함께 마시고 싶은 심정은 아마도 이 글의 끝을 어떻게 맺을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진정시켜줄 뭔가가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지. 내게 초컬릿' 이라는 소재를 던저준 그 순간부터 다른 용도 혹은 글의 주제를 도무지 찾아낼수 없는것은 아마도 너무 강한 이 초컬릿의 똑부러진 성질때문인것 같다. 아 맛있겠다 라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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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환
초콜렛 흔히 초콜렛은 담배, 커피, 술 과 함께 4대 합법적 마약에 속한다(개중에 난 녹차요, 치즈케익이요 한다면 할말없음)고 들 말한다 이중에서 술은 간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있고, 담배는 특히 미국 내에서 상징적으로 '마약'처럼 취급하는정도의 분위기.(물론동의하지않은 나같은 애연가들도 어쩔수없게 담배를 케이스에서 뽑아낼때마다 해골마크나 '담배를안피게하는것에전혀도움안되는' 기분 나쁜 그림을 보아야하는것이 사실임) 커피는 고혈압과 위장질환, 불면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최근 커피의 효능에 대해 많은 기획연구가 이루어지며 혹 커피가 동맥경화와 암을 억제한다고 발표되고 있으나, 때는 늦은 것같다. 모든 사회적 통제가 그러하듯, 그 이유의 이면에는 늘 정치적 이권다툼이 있기마련이다. 예를 들어 담배농장이 많은 제 3세계 국가의 성장을 매우 윤리적인 이유로 막거나 커피 대신 세계적으로 차의 생산량을 늘리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앞마당에 차잎을 심고 후식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독점기획하려는 '집권자'의 횡포라고 감히 상상해볼수도 있다. 실제로 높은 질병 사망율을 가진 뇌졸증, 중풍, 동맥경화 및 비만질환등에 대해서, 우리의 혈관을 조여오는 치즈나 삼겹살 등을 통제하지 않는 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초콜렛은 어떠한가?
그들은 매우 잘해오고 있다. 그들은 아주 적당히 통제와 호용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담배와 커피보다는 더 식품같은, 고구마와 땅콩보다는 더 상품같은, 이미지를 교묘하게 구축해왔다.
심지어 커피를 마시는 날은 없고, 담배를 피는 날도 없다. 그러나 초콜렛을 사야하는 날은 있다. 하지만 당근즙을 섭취해야하는 날은 없고, 청량고추를 심어야하는 날은 더더욱 없다.
초콜렛은 우리에게 마약처럼 '끊지못하는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원'부터 '특별한 사람을 위한 품격있는 명품'의 포지션까지 매우 다양하게 접근해왔다.
그렇다-나는 여기서 초콜렛과 전쟁을 선포한다. 초콜렛은 좋지만, 초콜렛이 지금까지 보여왔던 행보는 너무나 얄밉고 교묘한 구석이 있기 떄문이다.
이제 여기서 나는 '해바라기씨 선언'을 통해 해바라기씨의 전면적인 유통과 브랜딩의 개진을 선포하는 바다.
이를 위해 해바라기씨 차를 시작으로 해바라기씨 캐릭터 인형까지 전면적인 변화를 촉구할 것이다.
이제는 변해야한다. 해바라기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B다.(물론 아닐수도 있다.) 초콜렛에게 선전포고한다. 언제까지 A가 될수 있을지 잘 고민해라-
결국 세상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늘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가 그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지여다.
아니면 우리와 함께 해바라기씨에 초코를 바르는 대신에, 우리안으로 들어온다면(해바라기씨안에 초코가 들어있는 형태) 기꺼이 받아주겠노라- 끝-
2011년 3월 15일 화요일
The 8th Maison in the B 후기
The 8th Masion In The B
2011년 3월 11일

안태준/예비영화감독, 인지희/국회도서관



현재 한국영화 업계에서 영화인들이 얻고자 하는 에너지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등 에서 심여를 기울여 발전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컨텐츠'는 무엇일까 모두 함께 고민해 보았고
그것은 결국은 인더비가 B를 찾는일과 동일하지 않은가 생각해봄.
금요일 Maison 파티 후 안태준 예비감독, 월요일에 사무실 전격방문(술이 취해있었음)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함께 생각을 공유하기로 함-

같은 맥락의 약간은 다른 영역의 전문가인 인지희 사서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정보력'의 부족한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국회도서관이 국내 제일의 도서관 일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뒤업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소액의 예산과 소극적인 관심을 얻고있다는것이 놀라울 따름.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분야, 예를 들면 도서, 인문/자연과학 등의 소위, '실적이 크게 눈에 띄지않는' 부분에 늘 소흘한 것,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가아니라 구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정책으로부터가 아닌 우리로 부터, 밑으로 부터의' 혁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하게됨-

2011년 3월 11일

안태준/예비영화감독, 인지희/국회도서관
현재 한국영화 업계에서 영화인들이 얻고자 하는 에너지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등 에서 심여를 기울여 발전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컨텐츠'는 무엇일까 모두 함께 고민해 보았고
그것은 결국은 인더비가 B를 찾는일과 동일하지 않은가 생각해봄.
금요일 Maison 파티 후 안태준 예비감독, 월요일에 사무실 전격방문(술이 취해있었음)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함께 생각을 공유하기로 함-
같은 맥락의 약간은 다른 영역의 전문가인 인지희 사서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정보력'의 부족한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국회도서관이 국내 제일의 도서관 일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뒤업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소액의 예산과 소극적인 관심을 얻고있다는것이 놀라울 따름.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분야, 예를 들면 도서, 인문/자연과학 등의 소위, '실적이 크게 눈에 띄지않는' 부분에 늘 소흘한 것,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가아니라 구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정책으로부터가 아닌 우리로 부터, 밑으로 부터의' 혁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하게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