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7일 금요일

Open Party를 마치며-

3회에 걸친 In the B 의 오픈파티가 끝나고 감기가 걸렸다.

대단한 준비를 하진 못했지만,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가능성 및 문제점들을 알수 있었던 시간이 었다.

오픈파티 속 작은 행사였던 미디어퍼포먼스 "아날로그를 위한 비디오 협주곡 1번 "은

회사의 성격, 그리고 방향의 설명을 돕기 위해 만든 것이며,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의

대표모델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한번 밝힌다. 여러가지 오해 속에서 많은 분들께서 우려하셨던 바,

미디어 BASE 를 통해서 예술을 추구하는 그룹인가? 혹은 백남준 아트같은 것이냐?

하는 질문 및 걱정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것은 지양하는 관점임을 상기해주시길-

반면, 공연 에서 느끼는 자극에 대한 사람들의 수동적인 입장에 대해서,

나는 약간의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 공연이란 단어를 너무 쉽게 정의해버린다.

고전과 현대, 혹은 장르별로 연극, 뮤지컬, 음악공연, 무용, 퍼포먼스, 기타등등...

이것은 매우 좁은 의미의 공연을 의미하는 것이며,

'현장속의 실천 그리고 실행' (JEAN MARIE PRADIER, 1998) 이라는 관점에서

공연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더 많은 자극을 우리가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최근 관람했던 뮤지컬들 보다, 단연 올해 여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웃고 떠들고, 게임을

하며 놀았던 그 현장에서의 실행들이 더 자극적이 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물론 술자리의 잡답이 공연이 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연출가는 없어도 연출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연출이란 현재의 이곳을 재현함에 있어서, 구성, 호흡, 의미적 자료체, 통사론을 고려하면서,

공간 속의 객체들 간의 이상야릇한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출이 최소한으로 참견된

Improvisation의 경우, 공간안에서 기본적인 설정들만을 고려한 뒤, 그 안에 벌어지는

해프닝에 최대한 초첨을 맞추는 것이다. 저자거리에서 매일밤 색다르고 자극적인 실행을

만들어내는 '남사당놀이'는 영화 '왕의남자'를 떠올리지않더라도 매우 '즉흥성이 강한 실천'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의 일어나는 잘 정리된, 혹은 대충 정리된, 실행과 실천' 이라는

공연의 정의는 우리가 하게 될 생각의 BASE가 될 것이다. 또 오해가 없어야 하는 것은 이런 생각이

결코 연극과 뮤지컬등, 기타 인터파크에서 구매가능한 컨텐츠들의 부정이 아니며,

폭넓게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공연은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이해 했을 때, 더 재미난 상상들이

실현된 다는 점을 주목해달라는 것이다.


두번째, 대중적임과 예술적임에 대한 경계의 오해이다.

어떤 것이 예술적인가? 에 대한 견해, 즉 예술성의 정의는 늘 반론의 여지를 가지고

불안정하게 논의된다. 어떤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중적이라 불리기도하고 그렇지 않기도한다.

또 어떤 대중적이라 불리는 것들은 예술적이않다고도하며, 예술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먼저,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 판단하는 방법, 장소, 사람 등- 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적임 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 과연 몇명의 대중에게 OK를 받아야 대중성을 가지게

되는가? 팀버튼은 제임스카메론 보다 덜 대중적인가? 애플과 삼성은 누가 더 대중적인가? 혹은

더 예술적인가?

기대하지 못한 컨텐츠를 받아들이게 될 때, 어떤사람은 충격에 휩싸이거나, 또 어떤 사람은

'저건 너무 예술적이다' 혹은 ' 실험적이다.' 라고 판단한다. 게다가 어떤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코코샤넬이 처음 여자들에게 바지를 입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여자가 바지를 입는 다는 것은 지나치게 실험적이다고 판단해버렸다. 지금 길에서 바지를 입은

여성에게 '대중성없이 옷을 입으셨군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매우 실험적인 일일 것이다.

예술적임과 대중적임의 경계는 매우 복잡한 사회,정치적 상황 및 판단기준의 시간, 취향,

사람, 공간 등 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1박2일을 좋아하는 사람과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둘다 좋아하는 사람과 둘 다 싫어하는 사람이 공평하게 존재한다는 것-

다만, 제시된 컨텐츠들은 대중적이든, 예술적이든, 가치있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나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도 어느날 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수 있는 충격의 가능성이, 적어도 맨날 먹는 쌀밥이나 출근할 때 향수를 뿌리는 것

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텍스트 중심의 사고에서 오는 단절과 보지않았던 것에 대한 상상의 막힘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B에 대한 정의를 해야할 것 같다.

B를 이야기 할 때, B는 B급영화, B급정서, 혹은 B-SIDES 에서 말하는 B와는 다르다.

우리의 B는 마이크로트렌드가 아니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모든 생각들(A)의

예비A라고 말할 수 있다. 과일만 먹고 살아가는 과일주의자는 예비 A가 될 수 없다.

대신 떡볶이와 오뎅이 분리되어 팔리던 시절, 오뎅을 떡볶이 국물에 묻혀서 팔아버린

최초의 아이디어는 우리의 B가 될 수 있다.

우리가 B를 찾아서 그리고 LIVE ART, 즉 현장성있는 실천를 통해서 새로운 자극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공연인가, 뮤지컬, 연극처럼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것으로 오해한다.

우리의 '현장의 실천' 때에 따라 목적이 될 수도,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즉, 현장의 실천을 위해 B를

찾는 것 과 새로운 B를 위해 '현장의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오뎅을

떡볶이 국물에 빠뜨리기 위해 공연컨텐츠를 이용하겠다는 의미다.

'아날로그를 위한 비디오 협주곡1번'은 사무실 공간에서 매우 상상가능한 일들이다.

사무실 공간을 - 사무가 매우 잘되는 사무실이 절대로 아닌 사무실 - 으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래서 그안에 현장성 있는 컨텐츠로 채워본 것이다. 사무실을 밖으로 만들었고, 구름을 만들고

비를 내렸다. 별이 빛나고 달이 어른거리게 하였다. 밖에서 안에 들어왔을 때,

또다시 밖을 만나는 곳에서 우리는 사무를 한다. 그리고 그 밖(사무공간)에서의 안은

카메라로 담은 비디오들이 차지하는데,

그 비디오를 담은 카메라의 시선은 현장의 시선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런데

그것을 또한 현장 속에서 연결하면서 관점의 복수성, 동시성을 이용했다. 사람들은 사무하는

우리를 보며, 사무공간 속 비디오를 보며, 비디오와 사무하는 우리가 겹쳐진 것을 현장에서 보며,

그것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며- 이것들을 모두 동시에 보게 하였다. 이런 상상 가능한 것들의

실현으로인해 사무실은 더 사무실 같지않게 되었지만 결국 우리가 사무하는 사무실이다.

앞으로 행해질 회사의 프로젝트들은 모두 이렇게 B를 찾아내는 것을 통해 연구될 것이다.


물론 B를 찾아내고, 그것을 A로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숟가락을 사용하던 시대에 처음으로

젓가락을 사용한 사람을 상상해보자.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대중성이 결코 없을 것

같은 젓가락 질 은 이제 A가 되었다. B(젓가락)를 찾아내는 일은 A(숟가락)에 대한, 의심과 불만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지만, A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A(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사용되는

식사도구 시스템)를 위한 고민이다. 하지만 A가 아닌 모든 것이 B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고민과 노력은 끝이 없을 것이다.


'만물은 변화 속에서 머문다' 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다시한번 상기하면서-

후기 2편에서는 성지환님께서 사업성 및 수익성 측면에서의 B를 논할 예정이다.

다시한번 오픈파티에 와주신 분들게 감사드리며

앞으로 계속 In the B항해를 주목해주시길-

By doroom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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